한 치의 비판과 반박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일방적인 ‘속도전’으로 진행되던 박근혜 위원장의 새누리당 쇄신작업에 비해 공천 작업이 이상하리만치 비정상적으로 느리고 한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4월 총선에서의 완패를 사전예고라도 하듯 비관적 전망을 담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고, 당 안 팎에선 걱정과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는데도 정작 박 위원장의 비대위와 공추위가 보이고 있는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공천이라는 것이 단지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 보인다. 현재 새누리당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에 놓인 정당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공천위가 출범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공천위원들이 여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충격적이다. 정홍원 공천위원장이 13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천 진행 정도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그랬다고 한다. "구체적인 작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검증을 하려다 보니 절차가 많아서 하여튼 빠른 시일 내에 (작업을 하겠다)"고. 공천위 관계자가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공천위 회의가 '학습과정'으로 진행됐다고. 외부 인사가 많다보니 공천과 관련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당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한 술 더 뜬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공천위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은 당과 지역상황을 모르는 공천위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중차대한 시기에 집권여당의 공천을 심사할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절차가 많아서’ ‘아무것도 몰라서’ 공천심사에 손도 못 대고 있다는 뜻이다. 공천위가 출범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공천이 늦어지고 있는 데에 이런 이유를 대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공천심사 결과는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일까? 2주가 지나도록 당 내 사정도 모르고 지역상황도 몰라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내내 가르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3주차에 접어들어 공천심사에 들어가는 16일부터는 갑자기 전문가로 돌변해 모두가 인정하는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면서도 계파를 불문해 수긍할 수 있는 절묘한 공천심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공천지식도 없고 아무것도 몰라 ‘오리엔테이션’ 중이라는 공천위가 비교적 일찌감치 내놓은 ‘현역 비례대표 의원의 TK(대구,경북)지역 공천 배제’란 기준은 과연 어떤 근거와 판단에서 내놓은 것인가? 이러니 TK에 공들여온 송영선 의원이 “납득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고, 홍준표 의원이 “정무적인 감각을 가지고 공천을 해야 되는데 전략이 없다”며 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 신지호 의원은 “공천 과정에 자꾸만 하나둘씩 의구심이 든다”며 벌써부터 공천심사에 불복할 태세다. 독자적인 실권을 쥔 공천위가 아니라 윗선의 지시를 받아 그대로 행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현재 새누리당 공천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쯤 되면 이런 ‘오합지졸’ 인물들로 한가한 공천위를 꾸리도록 한 박근혜 위원장의 의도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박 위원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당의 총선 승리 의지 없이 자신 몸 ‘금칠’에만 몰두하는 박근혜, ‘대권’만을 노렸나
새누리당의 최후의 보루, ‘낙동강전선’ 수호에도 공천위가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통합당이 일찌감치 후보를 내고 ‘문성길(문재인, 문성근, 김정길)’을 통해 노풍을 일으키면서 ‘낙동강전선’이 무너질 판인데도 새누리당은 현재 후보의 윤곽조차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박 위원장 측근조차 "지금 야당의 공세에 맞서 선거전략을 짜고 맞대응을 해야 하는데 공천이 늘어지다보니 여력이 있는 의원들조차 지역구에 매달려 당의 일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켜내야만 하는 마지막 전선에서마저 박 위원장이 사실상 손을 떼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가장 뼈아픈 ‘정권심판론’에서 벗어나 새누리당이 갈라져 있는 보수진영을 결집하고 총선에서 기대를 걸어봄직한 이슈인 한미FTA 문제에서도 박근혜 비대위는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비록 박 위원장이 ‘한미FTA 반대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모처럼 강한 목소리를 냈지만, “‘한미FTA 전도사’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짓” "한미FTA는 논란이 있는 사안"이라고 떠드는 김종인, 이상돈 두 비대위원의 발언에 대해선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뜻과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즉각 부인하고 자제시켜온 박 위원장이 두 사람의 개인플레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그런 탓에 마치 세 사람이 역할을 분담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의심마저 든다.
총선 결과가 대선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이와 같은 현실에 가장 다급해야 할 처지에 놓인 박 위원장 스스로도 4월 총선을 별로 걱정 하지 않는 눈치다. 최근 언행에서도 총선에 대한 조바심이나 걱정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마음을 비워도 이렇게 깨끗하게 비웠나 싶을 정도다. 박 위원장은 15일 라디오 정당대표 연설에서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성큼성큼 미래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역시 초지일관 강조한 것은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이었다.
현재까지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4월 총선을 대비하고 있는 정상적인 집권여당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공천은 쇄신의 화룡정점”이라면서도 그토록 중요한 공천 심사를 맡기겠다는 공천위는 공천이 뭔지도 잘 모르는 문외한들로 구성하고, 하루라도 빨리 선수를 결정해도 모자랄 판에 공천 작업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도록 방치하고, 그로 인해 낙동강전선에서의 ‘노풍’이란 불길을 더 타오르도록 조장하면서도 반면, ‘공천독재’란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공천을 무기로 비판의 재갈을 물린 채 나홀로 독야청청하고 있는 박근혜 위원장. 모두가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홀로 스스로에게 금칠을 하고 있는 박 위원장의 최종 목표는 진정 무엇인가.
박 위원장이 당의 민주화, 선거 승리, 정체성, 국민의 믿음 등 이 모두를 희생시키며 노리는 것이 제발 다음과 같은 ‘이기적’ 이유들 때문이 아니길 빈다. 어차피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면 당의 몰락을 대가로 대선주자인 자신만이 부각되고자 하는 것, 공천을 통해 당을 충성맨으로 채우고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계산 말이다. 이미 많은 국민과 지지자들은 박 위원장의 미심쩍은 리더십에 빨간불을 켠지 오래다. 옆의 사람에 눈길 한번 허락하지 않는 ‘닥치고 근혜’식 정치를 강요하는 것은 한명숙 대표의 ‘한풀이’ 정치 못지않게 국민에게 해악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 입장에선, 계산에 따라 움직이면서 결과적으로 당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박 위원장이야말로 야당의 한풀이 정치를 키워주는 진정한 ‘X맨’일 수밖에 없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