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일은 우리 정치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듯하다. 한나라당이 14년 3개월간 쓰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날이자, 보수정당을 표방하던 한나라당이 깃발을 내림으로써 사실상 대한민국 보수정치가 막을 내린 날이기도 하다. 마침 이날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환갑을 맞는 날이기도 했다. 더불어 이 날은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와의 합당 문제를 마무리 지은 날이기도 하다. 어느 면으로 보나 이날은 박 위원장의 날이었다. 막강 권력을 휘두르는 친이계로부터 ‘공천학살’을 당하고 핍박받던 처지에서 절치부심, 집권 여당 공천심사위원 자질비판 여론도 “사퇴로 일단락 됐다”며 단칼에 정리할 만큼 막강한 위치에 선 것이다. 모 종편의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찬사는 박 위원장의 위상이 태산 아래에 위치하게 된 바로 이날 보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대한민국 보수우파들의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자신의 생일날 직접 보수정당의 깃발을 스스로 내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물론 긍정적으로 풀이하자면 당의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복지’를 강조, 앞만 보고 달린 한국 경제발전 과정이 낳은 부작용을 고쳐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낡은 정치, 권위주의 이미지를 벗고 당명 그대로 대한민국을 이전과 다른 ‘신세계’를 만들기 위해 진보적 정치를 해보겠다는 뜻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 바꾸고, 이름 바꾸고, 몇 가지 정책을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헌나라당’이 ‘새나라당’이 되고 보수우파 정당이 진보좌파 정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진보적이고 좌파적으로 진행되는 당의 행보와 달리 박 위원장 개인의 정치적 리더십은 거꾸로다. 오히려 파쇼적이고 봉건적으로 흐르고 있다. 당의 중요한 문제들이 박 위원장의 독단적 행태로 결정되고 있고, 당의 민주화를 역행하는 박 위원장의 권위주의적이고 비밀주의적인 리더십을 비판해야 할 당의 구성원들은 입도 떼지 못하고 있다. 공천의 칼을 쥔 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들이야 그렇다 해도 이런 분위기가 새정치를 하겠다는 ‘새누리당’에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박 위원장이 오히려 '알아서' 당내 민주질서를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박 위원장은 민초들이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들으시겠느냐 이 말이다.
‘새누리당’ 당명 미리 정해놓고 벌인 국민공모, 박근혜 명분을 위한 대국민 기만쇼
새누리당이 당명과 어울리지 않게 과거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수구적이고 봉건적 질서가 강화됐단 사실은 몇 몇 사례만 봐도 명확하다. 당명 공모 해프닝과 공천심사위 논란이 바로 그 선명한 예다. 한나라당이 새 당명을 공모한 기간은 지난 1월 27일부터 29일까지였다. 3일간 국민공모를 받으면서 후보작을 추려내다가, 1만여건이 넘는 공모작이 쇄도하자 2월 2일까지 기간을 연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새 당명 국민공모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28일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 산하 소속 팀장 이름으로 새누리당 도메인인 "saenuridang.or.kr"의 인터넷주소가 등록을 이미 마쳤다고 한다.
국민공모가 끝나기도 전에 새누리당 도메인이 등록됐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게다가 처음 공모 기간인 29일 이전 28일에 이미 도메인을 등록했으면서 기간을 연장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다른 유력 당명 후보작들과 함께 등록했다는 해명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지적대로 투표 기간 중 개표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원칙과 정도에 반하는 행위다. 새누리당이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의 작품이라는 것, 놀란 모든 비대위원들의 반대에도 박 위원장이 별 고민도 없이 이 당명을 즉시 강행해 통과시킨 점을 보면 정황상 ‘짜고 친’ 분위기가 강하다. 새 당명 국민 공모는, 당명을 밀실에서 홀로 결정한 뒤 그 독단적 행위에 명분을 주기 위한 박 위원장의 정치쇼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주인인 국민과 당원들의 의사는 전혀 묻지도 않고 세금을 쏟아 부어 박 위원장이 원하는 당명으로 바꾸는 ‘대국민 기만쇼’가 박 위원장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국민만 보고 가는 정치’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혹시 국민은 박 위원장만 보고 가라는 정치를 잘못 얘기한 것이 아닌가.
‘토달지 말라’는 박근혜식 ‘공포 정치’가 ‘새누리당’의 新정치인가
공천심사위원회를 둘러싼 잡음도 그렇다. 평범한 주부라던 진영아 위원이 알고 보니 한나라당 외곽조직 대변인을 지냈고, 18대 총선 때에는 비례대표까지 신청한 닳고 단 정치적 인물로 드러난 후 박 위원장의 발언은 또 한 번 봉건시대 왕족을 떠올리게 해 구설에 올랐다. 파문 끝에 진 위원이 사퇴하자 박 위원장은 “(진 위원이) 자진해서 당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고 했다. 사퇴했는데 자꾸 토를 달고 이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이제 이걸로 마무리가 됐다”고 공심위원들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얼마 전 동생 박지만씨가 저축은행사건으로 구설에 올랐을 때 “내 동생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일축하던 바로 그 모습이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질문과 의혹 제기 자체를 용납지 않겠다는 것이다.
진 위원 뿐 아니라 몇몇 위원들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도 박 위원장은 공심위의 언론 접촉을 제한시켜 버렸다. 소통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근 셈이다. 당명도, 공천심사위 구성도, 공심위원들의 언론 접촉문제도 모두 박 위원장 뜻대로 결정이 났다. 비대위 출범부터 그랬다. 이런 마당에 이런 공심위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천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서 박 위원장의 독단적 리더십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할 의원들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박 위원장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자신이 믿는 몇 몇 사람들을 빼고는 새누리당의 모든 중요사항을 비밀에 부쳐 언론과 국민의 검증 자체를 막고, 그러면서도 당명 공모 해프닝과 같이 자신의 독선적 정치에 명분을 끼워 넣는 식의 정치쇼만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 염원을 담아 낼 수 없다. 자신의 생일에 맞춰 당명을 바꾸는 대국민 기만쇼를 기획하고, 그동안 꿈쩍도 않던 친박정당 문제를 정리하며 위세를 대대적으로 과시하면서 그 위압적 기세로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는 식의 ‘공포 정치’는 새 정치가 아니다. 박 위원장 말대로 ‘새누리당’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내용물이다.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새누리당의 현재 모습은 한나라당 시절보다 훨씬 퇴보한 구태 그 자체다. 시민주권을 외치며 21세기를 살아가는 깨어있는 국민들에 어필하기엔 박 위원장의 여왕정치는 시대착오적이다. 이대로 간다면 새누리당의 생존 기간은 한나라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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