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칭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는 과연 원칙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쇄신을 하고 있는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막상 박 위원장 스스로도 “그렇다”고 쉽게 대답하지는 못할 듯싶다. 한나라당에 찌든 오물과 같이 붙어 있는 부정부패, 보신과 기회주의, 기득권사수, 부와권력의 세습, 줄세우기 및 계파싸움 등등 고질적인 구태에 대해 비대위가 제대로 손을 못 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다시피 비대위원 상당수가 이런 구태의 때가 묻어 있는 구태 인사들이다. 그러니 쇄신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기계적인 공천룰이나 당의 정체성 문제만 가지고 만지작거리면서 괜한 반발심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따지면, 이런 인물들로 중차대한 시기에 비대위를 구성한 박근혜 위원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쇄신의 원칙을 깬 셈이다. 첫 출발이 어긋나면 마지막 도착지점도 달라지는 법이다. 박근혜의 원칙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비대위원의 첫 면모가 이렇다면 박근혜 위원장이 생각하는 한나라당호 쇄신의 도착점이 어디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쇄신의 대상이나, 쇄신을 지켜보는 국민이나 모두 현재 한나라당 쇄신 방향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기본적인 쇄신의 룰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재론하지만, 이것은 원칙의 문제다. 쇄신 대상을 쇄신 주체로 둔갑시켜놓은 박 위원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변칙적 쇄신으로는 한나라당을 원칙이 지켜지는 정상적인 정당으로 돌려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대위를 둘러싼 온갖 잡음과 논란이 바로 첫 경고신호다.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라는 이미지는 여기서부터 벌써 금이 가고 있다.
박근혜가 비판한 ‘제왕적 1인 지배 정당’으로 과거 회귀한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 체제
‘점령군’ 소리까지 듣는 박근혜 비대위와 활동 내용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박 위원장 스스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는 점도 발견된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02년 당시 이회창 총재 체제의 한나라당을 ‘제왕적 1인 지배정당’이라고 비판하면서 탈당한 전력이 있다. 박 위원장이 탈당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당권과 대권의 분리라는 원칙이었다. 그는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이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비난하며 탈당했던 것이다. 박 위원장은 대선 1개월 정도를 앞두고 이 총재가 이 요구를 받아들이면서야 당에 겨우 복귀했었다.
박 위원장은 이 원칙을 지난 대선 경선 후보시절이나 대선이 끝난 뒤에도 줄곧 고집했었다. 2005년 그가 당권을 쥔 대표시절에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다른 후보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없도록 대선 1년 6개월 전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 당규에 따라 임기보다 앞서 대표직을 내놓기도 했다. 불과 약 8개월전쯤에도 박 위원장의 이런 원칙은 확고했다. 작년 5월 19일 황우여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도 당권, 대권 분리 당헌 당규 개정과 관련해 "쇄신명분과 원칙을 상실하면 안 된다" “정당정치개혁에 있어 후퇴는 있을 수 없다"며 당권 대권 분리 원칙을 명확히 한 바 있다.
그랬던 박근혜의 원칙이 이번 비대위 체제에서는 완전히 실종된 것이다. 당권과 대권을 틀어쥐고 이에 따라 사실상 공천권까지 쥔 절대 권력자가 된 박 위원장은 자신이 그간 지켜왔던 원칙을 깨고 정당정치 개혁 후퇴의 결정체인 비대위 체제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다. 현 비대위의 모습은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한다는 핑계를 대고 한나라당 역사상 가장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제왕적 1인 지배정당’이었다는 이회창 총재 체제도 현 비대위만큼은 권력을 누리지 못했다. 최소한 당의 반민주적 질서에 대해서 박근혜 당시 부총재가 이의를 제기했던 것처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고, 그 문제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은 있었다. 또 현 비대위원들의 안하무인 쇄신놀음과 같은 측근들의 망나니짓 행태도 보기 어려웠다. 일부에선 고승덕 의원의 때 늦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폭로도 박 위원장의 쇄신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하고 있다. 비대위가 원칙 있는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신뢰를 잃은 탓이다.
원칙과 신념 접은 한나라당 박근혜식 쇄신에 국민 절망할 것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의 한나라당 모습은 어떤가? 공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다수의 의원들은 절대 권력자의 눈치와 심기를 살피기에 급급하고 비상식적인 비대위원들의 전횡에 대해서는 단발마적 불평, 불만만 늘어놓을 뿐 적극적으로 이를 문제 삼고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권력이 1인에게 집중돼 있음은 물론, 박 위원장의 ‘제왕적 1인 지배정당’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이도 발견하기 어렵다. 절대 권력자가 된 박 위원장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는커녕 그 체제를 인정하면서 당 쇄신 방향 논의를 위한 자리도 제대로 마련되기 어려운 게 작금의 한나라당 현실이다.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지우려는 박 위원장의 ‘재창당을 뛰어넘은 쇄신’과 탈당한 쇄신파가 주장한 ‘재창당’의 간격이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인가? 그 정도의 요구에 대해 최소한의 진지한 논의의 장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가 후퇴한 현 비대위 체제를 보고도 박 위원장은 과연 정당정치의 민주화라는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위기를 핑계로 댄 원칙은 원칙이 아니다. 또 현 수준의 위기는 사실상 늘 있어 오기도 했다.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대로 된 처방과 치료약을 쓰지 않고, 위기를 틈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념과 원칙을 접고 변칙적으로 당을 운영하는 것은 ‘원칙과 신념의 정치인’이라는 박근혜 위원장이 보일 태도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행태다.
국민만 바라봤던 때, 박근혜의 ‘원칙과 신뢰’는 국민의 지지를 얻고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권’이라는 목적지만 바라보고 가는 한나라당의 현 쇄신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기 어렵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박 위원장이 자신이 가진 정치적 자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원칙과 신념마저 내려놓은 것은 박 위원장 뿐 아니라 한나라당의 비극이다. 원칙과 신념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권을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된 야권의 무원칙하고 간사한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이 그 행태를 그대로 따라가는 한나라당의 모습에선 실망 그 이상의 절망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그 절망의 끝에서 촛불을 켜고 어둠을 뚫고 올 신랑을 간절히 기다리는 신부와 같은 심정으로 대안을 갈구하는 국민과 지지자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현재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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