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ㆍ관계 로비의혹은 사실무근 결론..비자금 의혹 등 의문은 남아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99일간의 수사를 마치고 17일 삼성그룹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다.
특검팀은 이재용 전무에게 계열사 지분이 헐값에 넘어가 그룹 지배권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 이건희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미완의 사건이었던 `경영권 세습 의혹'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룹 전ㆍ현직 임직원 명의의 금융계좌 및 계열사 주식을 이용해 관리돼 온 거액의 자금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었던 것으로 파악돼 조세포탈 혐의가 적용됐으며 정ㆍ관계 로비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4조 5천억원대의 차명재산이 모조리 이 회장의 개인 돈이라는 삼성측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비자금 의혹'은 완전히 풀리지 못했고, 계열사 분식회계 의혹에 이르기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각종 의문점들도 여러가지 제약때문에 해소되지 못했다.
◇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 에버랜드 사건과 서울통신기술ㆍ삼성SDS 관련 고소ㆍ고발 사건으로 구성된 `경영권 세습 의혹'은 이재용 전무에게 계열사 지분이 싼값에 넘어가 탈법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골격으로 한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사건은 이 회사의 지분관계가 그룹 지배권을 좌우하는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에 비춰볼 때 핵심 사건으로 꼽히며 `삼성 의혹' 전체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특검팀은 에버랜드 지분이 이 전무에게 헐값에 넘어가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하는 과정을 전략기획실의 전신인 그룹 비서실이 주도한 점, 그리고 이 회장이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새롭게 확인했다.
이미 1천억원 가까운 손해가 발생한 점이 검찰의 선행수사에서 드러나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이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 핵심 인사들이 공범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에버랜드 사건과 비슷한 시나리오로 전개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 저가발행 사건도 이재용 전무에게 상장차익을 안겨주기 위해 이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의 `공모' 속에 진행돼 회사측에는 1천500억원대의 손해를 안긴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에서 이미 불법성이 인정됐는데도 `미완의 수사'라는 지적을 받아 온 경영권 세습 의혹에 대해 특검팀이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차명계좌ㆍ차명주식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 의혹 = 전직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작년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주요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촉발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특검팀은 1천199개의 차명계좌와 삼성생명 전ㆍ현직 임원 명의 지분 16.2%에 담긴 4조 5천억원이 비정상적으로 관리된 사실을 밝혀내고 이 재산이 비자금인지 여부를 수사해 왔지만 결국 이 회장의 개인 재산으로 판정했다.
해당 재산이 계열사에서 빼돌려졌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특검팀은 이 회장이 전략기획실을 시켜 `남의 계좌'로 주식거래를 했고 차익 5천643억원을 챙기고도 세금을 안 낸 사실, 주식소유 변동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점 등을 확인하고 조세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한편 삼성화재에서 1999년부터 3년간 고객 미지급 보험금을 지점에 내려준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며 10억원 가까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확인됐지만 이 돈이 전략기획실로 유입됐다는 의혹은 증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됐다.
수사진은 `삼성화재 비자금'에 대해 이 회사 황태선 사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물었다.
◇정ㆍ관계 로비 의혹 = `떡값 검사' 논란에서 출발한 이 의혹은 삼성이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국가기관 공무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줬다는 내용이다.
현직 검찰총장과 고검 검사장, 국가정보원장, 청와대 민정수석 등 현직 권력기관 최고위층 인사들이 `로비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의혹이어서 수사 결과에 국민적 관심이 가장 많이 쏠렸던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른바 삼성에서 `로비담당 임원'이라는 30여명을 모두 조사하고 계좌추적과 동시에 골프장 기록 등도 확인했지만 로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각 로비대상 인물별로 내놓은 주장에도 불분명한 부분이 있고 일부 인물들이 로비를 받은 의혹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소시효를 넘긴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삼성채권 830억여원의 행방도 추적해 봤지만 처벌할만한 자금 흐름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2002년 매입된 830억여원 중 삼성이 줄곧 보관하고 있었다는 443억여원은 도중에 유통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로써 정치권에 삼성 채권이 `당선축하금'으로 건네졌다는 의혹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특검팀은 수사과정에서 5억2천만원의 채권이 더 매입됐던 점, 443억원을 제외한 채권들 중 입고되지 않은 13억 3천여만원을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사용한 사실 등을 새로 확인했지만 이미 김 전 총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처벌된 상태여서 추가로 사법처리될 사항은 없다고 판단했다.
◇ 비자금 의혹 등은 의문 남아 = 특검팀의 결론대로라면 차명계좌와 차명주식, 심지어 고가 미술품 등의 형태로 은닉된 자금이 모두 이 회장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개인 돈이며 계열사 등에서 유입된 비자금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차명계좌속 자금이나 차명주식 배당금 일부가 거액의 단위로 한꺼번에 현금 인출돼 백화점 상품권 및 채권 구입에 쓰이는 등 세탁 정황이 드러난 사실이 설명되지 않았고 차명계좌에 담긴 돈이 원래 어디서 나왔는지가 자금추적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특검팀도 "최초 입금 자금원이나 전표 등의 보존기간은 5년인데 차명계좌는 대부분 2002년 이전에 개설돼 자금원을 명확히 밝힐 수 없었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삼성물산이 해외 법인과 허위 거래를 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의혹도 해외 금융계좌를 추적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하면서 특검팀에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지 못했다.
여기에 차명계좌와 관련해 소환된 삼성 임직원들의 진술이 여러차례 뒤바뀐 점이나 삼성 계열사 곳곳에서 수개월간 전산자료 삭제 등 증거인멸 작업을 벌였다는 점도 비자금 수사 결과가 진실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추정을 낳게 한다.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분식회계 의혹 또한 사실 여부가 명확하게 가려지지 못했다.
은밀하게 이뤄진 분식회계는 기업 회계감사 조서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데다 국세청에서 의혹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받아보려고 했으나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돼 단서 확보가 어려웠다는 것이 특검팀의 해명이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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