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침체에 빠진 한국 탁구를 중흥시키고 탁구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여력을 바칠 생각입니다"
지난 2004년 1월30일 한국 탁구의 `대부'인 천영석(78)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제19대 수장을 맡으면서 밝혔던 일성이다.
윤영호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를 포함해 내년 2월까지가 임기인 천 회장 재임 기간 약속대로 한국 탁구가 침체의 터널을 지나 도약했다고 보는 탁구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유승민(삼성생명)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만리장성을 허물고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는 `녹색테이블의 기적'을 연출했지만 그 이면에는 헤게모니를 차지하려는 어른들의 진흙탕 파벌싸움이 횡행했다. 한국 탁구의 빛과 그림자인 셈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을 4개월여 앞둔 올해도 탁구협회는 살림살이를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삐걱거리고 있다.
천영석 회장이 취임 당시 약속했던 연간 8억원 이상 찬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탁구협회는 전임 회장이던 윤영호 전 KRA 회장 시절이던 2003년부터 KRA의 든든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 2003년 12억원을 시작으로 2004년 6억원, 2005년.2006년 각 5억원, 지난해 4억원을 기부금과 대회 개최 비용 등으로 후원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자금줄이던 KRA가 지원하는 예산이 한푼도 없다. 협회가 KRA컵 형식의 국.내외 대회 일정을 짜지 않아서다. 대회와 관련 없는 불요불급성 비용을 지출하지 않겠다는 KRA로선 `퍼주기'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협회를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천영석 회장은 지난해 대표 선수 상금 적립금 8천900만원과 기금 이자 4억원 등 5억여원을 올해 예산으로 이월하려다 지난 달 28일 대의원총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했다.
회장 퇴임을 주장해왔던 반대파 대의원들은 오히려 3월31일까지 5억원을 우선 적립하되 그렇지 못하면 회장 출연금 이외의 비용으로는 사무국 직원 급료와 복리후생비 등을 지출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웠다.
오는 10일까지 1억원, 7월까지 4억원을 나눠 내겠다고 주장하는 천 회장은 약속을 못 지키면 용퇴하겠다고 맞섰지만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의원들은 천 회장의 불신임까지 불사할 기세다.
일본 탁구용품 제조사 버터플라이 한국총판 회장을 맡으면서 매년 2억원 가량을 출연하겠다고 공언하고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탁구계 내분에 원인을 제공했던 천 회장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남녀 대표팀을 이끌어왔던 `탁구 영웅' 유남규(1988서울올림픽 금메달)와 `탁구여왕' 현정화(1993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등 왕년의 스타들도 사령탑 자리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서 천 회장 퇴진 운동에 나섰다. 천 회장의 식언과 독선적인 협회 운영, 유망주에 대한 투자 부족 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천 회장은 "후배들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사라예보 신화'를 창조했던 `탁구 대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박수를 칠 때 떠나라'는 후배들의 아름다운 퇴진 요구를 거부했던 천 회장이 이제는 탁구계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중대결심을 해야 할 시점이다. 그가 한국 탁구에 남긴 공과와 상관 없이 탁구협회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한 카드로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chil881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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