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신호탄인가, 단순한 기싸움의 연장선에서 나온 대남 압박카드인가.'
북한의 요구에 따라 개성공단 남북 교류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는 남측 요원 11명 전원이 철수함에 따라 그 의미와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핵문제 타결없이는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장관의 최근 발언을 문제삼아 지난 24일 남북경협사무소 내 남측 정부 요원들을 3일 내에 전원 철수할 것을 요구했고 남측은 27일 새벽 11명을 철수시켰다.
◇"경협사무소 직원철수는 南정부에 대한 불만" = 남북경협사무소는 상시적 경협 협의를 위해 2005년 10월 개성에 문을 연 북한 내 남북 당국간 첫 상설 기구다. 남측의 통일.기획재정부.코트라.무역협회.중소기업진흥공단.수출입은행 등의 관계자들이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상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협사무소의 남측 인력 철수를 요구한 것은 남한 정부 당국에 대한 항의 내지 반발로 봐야 한다는게 정부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북측은 2006년 우리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쌀과 비료 지원을 전면 유보한 것을 문제 삼아 그해 7월21일께 경협사무소에 상주하던 9명의 북측 인원 가운데 당국 인력 3명을 철수시킨데 이어 남측 인원의 출입을 4개월 가량 제한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가 아닌 경협사무소 인원을 철수토록 한 것은 남측 당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 표시로 봐야할 것"이라며 "민간 기업 차원의 남북교류를 중단하겠다는 메시지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북관계 냉각기 신호탄인가, 단순 압박 카드인가 = 정부는 북한의 이 번 조치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달 이상 지속해온 `관망'의 결과에 따른 계산된 행동으로 보고 있다.
당국자들은 특히 최근 남측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대북정책 관련 발언 등이 잇달아 나온 시점에서 북한의 행동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일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 기조발언을 통해 북한에 인권개선 조치를 촉구했고 김하중 장관은 19일 북핵 진전을 개성공단 사업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했다.
이에 더해 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작년 남북정상선언(10.4선언) 합의 이행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는 점도 10.4선언 이행 필요성을 강조해온 북한에는 `무언의 메시지'가 됐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은 24일 처음 철수를 요구한 이후 다소 잠잠하다 업무보고가 있은 26일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해왔다고 한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다만 정부 당국은 북한이 김하중 장관의 발언을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반발의 시작으로 단정하긴 이르다고 보고 있다.
또 북이 리인호 경협사무소 소장을 통해 구두로 남측에 퇴거 요청을 하고, 서면으로 입장을 전해 달라는 남측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퇴거요청이 어느 선에서 이뤄진 결정인지, 의도는 무엇인지 등은 좀 더 분석해봐야 한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북한이 단순히 김 장관의 발언만 갖고 `장관 길들이기' 차원에서 대응한 것 정도로 가볍게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남측에서 나온 대북 메시지들을 지켜보며 그동안 간헐적으로 언론매체를 통해 우려 및 희망사항을 표명해온 흐름 속에서 이번 조치를 취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 北, 정치적 민감 시기 `메시지 효과 극대화' = 그간 이명박 정부에 대해 대체로 관망기조를 유지했던 북한이 남측 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과거와 달라진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이 가시화했다고 보고 행동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데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그 무게를 두고 남측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이용한 압박 카드로 보는 시각과 대남정책 수립에 따른 전면적 행동의 신호탄이라는 시각이 혼재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북핵 진전을 남북관계 발전과 연계하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총론은 공식 천명됐지만 각론은 다음달 중순 한.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그런 만큼 대북 인도적 지원과 10.4 선언에 담긴 주요 경협사업들의 향배가 한.미 간 조율을 거쳐 결정되기 전인 이 시점에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종의 경고와 압박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특히 남측이 다음달 9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라는 점에서 메시지의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북측이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대응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측의 이번 조치는 한미정상회담과 총선 전에 마지막으로 남측 정부의 태도 변화를 노려보자는 포석으로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또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남측 정부의 실용주의 대북정책은 이익이 되는 것은 하고 안되는 것은 안하겠다는 것이 골자라는 점을 감안, 남측이 이익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라도 남측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북측이 남한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갖고 행동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 놓고 있다.
◇정부 대응은..남북관계 `일시 단절' 신호탄 되나 = 북한의 이 같은 도발적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 또한 물러설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의 일시적 질곡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통령 생각은 원칙을 지키며 유연하게 간다는 것"이라면서도 "당장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당근책을 내놓진 않을 것이며 북한에 무엇을 따로 제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자신들이 바라는 남측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인도분야.경협.군사.남북대화 등 측면에서 하나 둘 씩 행동으로 불만을 표하고 그에 대해 남측도 `의도적 무시' 또는 `원칙적 대응' 등의 전략을 쓸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한은 이런 식으로 계속 남측 정부에 대한 압박을 단계적으로 해 나갈 텐데 출범 한 달이 지난 이명박 정부도 그간 천명해온 대북정책의 원칙에 충실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가 남북관계 냉각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쪽에서는 북핵 상황에 따라 일각에서 우려하는 `통미봉남'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레 내 놓고 있다.
만약 핵신고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북핵 프로세스가 급진전할 경우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과 그에 따를 대외환경의 긍정적 변화를 발판 삼아 6자회담 틀에서 남측을 배제하려 하고 남북대화를 한동안 단절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 그런 파국을 예상하기란 이르다는 지적이 현재로선 좀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총론' 만 공개된 상황에서 북한도 섣불리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기 보다는 최소한 한.미 정상회담때까지라도 사안별로 대응 수위를 관리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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