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한국 부산에서 열차를 타고 북상해 서울, 평양, 단둥(丹東)을 거쳐 선양(瀋陽)에 도착하는 게 제 마음 속의 가장 큰 꿈이었습니다."
25일 41년의 외교관 경력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한 아베 다카야(阿部孝哉.65) 주선양 일본총영사는 지난 21일 선양에서 열린 주선양 외교사절과 중국 동북3성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임 만찬에서 자신의 정년 퇴임에 대한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홍콩, 호주, 선양 근무를 제외하면 한국에서만 18년간 근무한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꼽힌다.
일본 외무성은 1965년 6월 한일협정 체결로 한국과 국교가 정상화된 이듬해인 66년부터 외무고시에 조선어(한국어) 전공을 설치했다. 조선어 전공에 지원해 선발된 첫 외교관이 바로 아베 총영사였다.
그는 면접시험에서 "태국어로 바꿔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영사와 한국의 인연은 대학 입학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63년 일본 조치(上智)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아시아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일협정 체결을 앞두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대학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아베 총영사는 25일 "당시 일본 사회는 오히려 북한에 대한 여론이 한국보다 호의적이었던 시절이었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학가에서 한일협정을 지지한 동아리는 우리가 유일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1967년 8월 자신의 첫 부임지인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71년 2월까지 서울 대사관에서, 75∼77년 부산총영사관, 89∼95년 서울대사관, 99∼2002년 서울 영사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선양으로 부임하기 직전인 2006년까지 부산총영사로 재직했다.
그는 한국 근무 시절 2001년 도쿄(東京)의 한 지하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유학생 고(故) 이수현씨 가족에게 조화를 보내고 추모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양국의 우호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아베 총영사는 북한과도 인연이 있다. 1999년 서울 영사부장으로 부임하기 전 본부에 근무하면서 잠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업무를 맡은 적도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경수로 건설현장인 신포와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자신의 소원대로 열차를 타고 쭉 올라오지는 못했지만 부산-서울-평양-단둥-선양을 모두 경험한 외교관이었다.
2006년 부산총영사였던 그는 마지막 해외 근무지로 중국 선양을 지원했다.
주선양 일본총영사관은 탈북자 처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총영사가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던 곳이라 꺼릴 법도 했지만 그는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근무하고 싶었고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라는 이유로 흔쾌히 선양을 선택했다.
아베 총영사는 선양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77∼79년 홍콩 근무 시절 잠시 배웠던 중국어를 되살리려고 그가 선택한 교재가 바로 중국어로 더빙한 한국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 DVD였다. 또 선양의 한인촌인 시타(西塔)가에 단골로 드나드는 한국식당이 있었을 정도로 그의 한국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데가 있었다.
특히 서울 근무 당시에 배웠던 거문고를 합주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게 남은 생애의 목표이기도 했다.
아베 총영사는 정년퇴임 후 계획에 대해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한국과 교류에 계속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고 밝혔다.
phillife@yna.co.kr
blog.yna.co.kr/phillife
(끝)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