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주종국 김준억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4개국 경제신문과의 공동인터뷰에서 "성장보다 물가안정이 우선"이라고 밝힘에 따라 앞으로 정부의 경제운용방향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쪽으로 선회하게됐다.
그동안은 물가안정과 성장의 양갈래 길에서 정부 당국자는 물론이고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어왔지만 기획재정부가 올해 성장 목표를 6%안팎으로 제시하면서 성장 쪽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 금융시장 동향이나 원자재가격 급등세 등이 국내 물가에도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통령도 동조함으로써 당분간 경제 정책의 기조는 성장보다 물가 안정에 맞춰지게 됐다.
◇ 물가 잡기 우선의 배경
이 대통령이 "이전에는 7% 성장에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사안은 물가를 잡는 것"이라며 성장 주도의 정책기조를 물가로 옮긴 것은 그만큼 대외여건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몰락하는 등 대외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우리나라의 주도입 유종인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고 곡물 등 원자재 가격도 꾸준히 올라 우리 경제가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라 제기됐다.
실제로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생산재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19.3% 급등했다. 이는 1998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특히 원재료 물가는 2개월 연속 45% 급등했으며 이는 앞으로 소비자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의 위기로 우리 경제의 성장 여건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급격히 얼어붙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5.0% 성장했지만 국민총소득(GNI) 실질증가율은 3.9%에 그쳐 12년 연속으로 GDP 성장률을 넘지 못했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고지에 올라서 경제의 외형은 커졌지만 국민의 실제소득은 이에 못미치는 '속빈 강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의 하락에 따른 착시 효과도 더해져 서민들은 5%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경제 구조에서 성장이 서민들의 살림살이 개선으로 직결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7% 성장을 고수하기 위해 원화 가치의 하락을 용인하는 등 수출 중심의 경제정책을 편다면 물가 상승의 압력은 더욱 커진다는 점에서 우선순위를 물가 잡기로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4월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새 정부는 지지도 하락 우려 때문에 서민경제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 출범후 첫 국무회의에서도 "장바구니 물가를 잡을 특별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으며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는 생필품 50개 품목을 집중관리하라고 지시했고 지난 20일에는 경제부처 장관들이 참여한 경제상황.서민생활안정 점검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물가안정 대책을 주문했다.
◇ 금리 인하론에 쐐기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최근 불거져 나오는 금리 인하 주장은 당분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운용 방향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성장 우선이냐, 물가안정이냐'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올해 6% 성장에 몸이 단 기획재정부가 금리인하를 내심 기대하면서 이런 저런 경로로 한국은행에 메시지를 전달해 왔으나 물가안정의 최종 책임을 져야하는 한국은행은 금리를 섣불리 내릴 경우 물가에 좋지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버티는 형국이었다.
언뜻 보면 대통령이 한국은행의 논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지만 최근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의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고성장이 지상과제였으나 앞으로는 정책 선택에서 다소 유연해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정책을 계속 뒤로 미뤄둘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단 물가가 급하니까 당분간 이를 우선시하라는 것이지, 올해 저성장을 해도 좋다는 발언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지금 물가와 성장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황은 상당히 어렵다"면서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정부가 둘중 하나를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둘다 놓칠수 없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발언으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기는 어려워졌지만 금리카드를 쓰지 못하게 된만큼 오히려 규제완화나 세금 부담 완화 등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또 오는 25일 국무회의에서 확정 발표될 주요생필품 50지수 등 서민생활과 관련이 큰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억제책도 나올 전망이다.
단순히 서민들이 많이 쓰는 품목에 대해 지수를 만들어 놓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구조 개선이나 매점매석 단속, 대외개방 등 행정력을 총동원해 물가를 잡아놓는 전방위적인 전략이 구사될 수 있다.
sat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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