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수.이율 기자 = 미국 달러화의 기록적 약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의 배당금 송금시기와 3개월째 이어지는 무역적자 등 원화 약세요인이 시장에 뚜렷하게 부각된 상황이라 자연스런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현상을 '대외 수지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로 단순하게 해석하기에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조만간 '1달러=1천원'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미 위태로운 수준인 물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할 가능성이 높고 좀 더 크게 보면 원자재가 폭등과 겹친 환율 상승이 장기적으로는 수출 경쟁력에도 긍정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 역주행 원화가치..수출 좋지만 '물가폭탄' 우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2.70원 오른 968.00원에서 거래가 시작된 뒤 개장 30여분만에 2년만에 최고수준인 980원선을 뚫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의 여파로 나타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속에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화에 대한 미국 달러화 환율이 유로당 1.5358달러로 사상 최저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조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시장 모두 세계 금융시장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서울 외환시장의 흐름이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1월 경상수지는 이미 적자규모가 26억 달러에 달해 11년만에 가장 큰 적자폭을 보였다. 만성 적자부문인 서비스부문은 제쳐놓고 무역수지만 봐도 고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 폭등으로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또 시기상 12월 결산법인들의 배당이 진행되는 철인 만큼, 외국인 주주들의 환전수요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도 이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시장에 달러화 '입구'는 없는데 '출구'만 여러 갈래인 셈이다.
원화가치의 역주행은 물론 수출쪽에는 분명한 호재다. 지식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적자였지만 이달에는 전월에 비해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원화 약세가 가져온 수출전선의 변화를 반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물가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 물가 전망치를 3.3%로 설정했지만 전년 동월비 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3.9%로 3년4개월만에 최고치를 치솟은 데 이어 2월에는 라면값 인상 등 수입원자재가격의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3.6%로 벌써 두 달째 정부 공식 전망치를 넘어선 상태다.
소비자물가의 예고성격이 강한 생산자물가지수를 보면 물가 압박 가능성은 더욱 우려스럽다.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8월 1.7% 상승을 시작으로 ▲9월 2.1% ▲10월 3.4% ▲11월 4.4% ▲12월 5.1% ▲올해 1월 5.9% ▲2월 6.8%로 갈수록 상승폭이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다.
원자재가 폭등에 원화 가치 급락이 겹치면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대외수지를 단기적으로 개선하려다 수습하기 힘든 '물가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경보에 다름 아니다.
◇ 정부, 관망 가능성 높아
물가 부담이 크지만 정부가 스무딩 오퍼레이션 등 시장개입을 통해 원화 약세기조를 되돌릴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서울 외환시장의 펀더멘털상 원화 약세가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경상수지 개선 필요성이 있는데다 6% 성장과 35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안정보다 '성장관리'에 방점이 찍힌 경제운용계획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기획재정부는 10일 내놓은 대통령 업무보고 설명자료에서 환율문제에 대해 '경상수지 동향과 괴리되지 않도록 환율 안정화에 노력'한다는 표현을 썼다.
환율의 지나친 급등락은 어느 상황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미 1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한 데 이어 연간 70억 달러 적자를 예상하는 시점에서 정부가 취할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원.달러 환율이 980원선을 뚫은 11일 주식시장에서 자동차주 등 수출주가 강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외환정책 당국자들도 "장중 공식 코멘트는 어렵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경상수지 적자 상황에서 원화 가치의 절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느냐"는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를 보충할 '실탄 공급처'격인 무역정책 당국자들도 이런 입장은 마찬가지다.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몇 달전 원화가치 상승 때는 대책회의를 여느라 부산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원화 약세가 수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원화의 역주행이 심화되면서 수출에의 단기적 도움이라는 이유로 원화 약세를 장기간 내버려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는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원화가치의 하락에 대해 "그동안 과도하게 고평가됐던 원화가 조정과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수출이 잘 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원자재가 급등이 지속되면 경상수지 흑자전환이 어렵고 원자재가가 워낙 올라 크게 유리할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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