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경욱 편집위원 = 세심한 소비자라면 물가가 크게 오르는 시기에는 이런 변화를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즐겨 먹던 과자류의 크기가 줄어들었음을 직감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가격은 그대로라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가격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간식거리의 크기가 언제부터인가 줄어들었음을 깨닫게 되면 "아! 물가가 크게 오르겠구나"하는 걱정부터 하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농업(agriculture)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쌀, 밀 등 곡물류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현상을 압축해서 설명하는 신조어다.
곡물자급률이 28%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로서는 애그플레이션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곡물자급률이 280%에 이르는 호주를 비롯해 웬만한 선진국들의 자급률은 100%를 넘는다. 이들 국가가 애그플레이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사정이 훨씬 낫다는 것은 사실이다.
애그플레이션은 단순히 곡물류와 관련된 상품만의 가격 상승을 압박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먹을거리의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전반적으로 밀어올린다. 당장 라면 등의 가격이 급등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년 사이 밀 가격이 무려 80% 이상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다. 이미 과자류와 아이스크림 가격은 오른 지 오래다. 더 오를 태세다.
문제는 곡물가격은 물론 철광석 등 천연자원 가격이 당분간 상승기조를 이어갈 것 같다는 데 있다.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으로서는 이런 추세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다.
애그플레이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가장 우려스럽다는 경제 상태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아지게 된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경제가 불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물가만 급등하는 현상은 경제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통화당국은 물가를 낮추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경제성장이 저해될까봐 걱정한다. 그렇다고 경제성장이나 국내외 금리차 해소를 위해 금리를 인하하자니 물가 급등이 우려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새 정부는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내외 경제 여건에서 출발하게 됐다. 당장 눈앞에 애그플레이션이니 스태그플레이션이니 하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소비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비롯해 노조의 압력에 의한 명목임금의 급상승, 기업 관리비 상승에 따른 임금상승 등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원인에 맞는 처방을 할 수 있다. 행여 정치논리를 경제보다 우선시하려 한다면 지금은 곤란하다. 특히 곡물자급률 급락이 우리 농촌이 사실상 붕괴 국면 진입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곡물류 및 천연자원의 자급자족 기반 확대와 물가안정을 목표로 한 자원외교가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점이다. 자원외교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새 정부다. 자원확보를 위해 지구촌을 동분서주하는 새 정부의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은 국민 모두의 소망이다.
kyunglee@yna.co.kr
(끝)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