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18일 치러지는 파키스탄 총선에서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면서 혼미를 거듭해온 파키스탄 정국이 총선 이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 결과는 미국의 대 테러전 파트너인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향후 거취와, 아프간 국경 지대에서 활동 중인 탈레반 알-카에다 등 국제 무장단체, 수십 기에 달하는 핵무기의 행방 등과 맞물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무샤라프 탄핵 위기 맞나 = 이번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 해 12월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제1당에 오를지 여부이다.
파키스탄 내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된 가운데 미국의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가 지난 달 19∼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PPP는 무려 50%의 지지율로 1위에 올랐고 냐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는 22%로 2위를 달렸다.
반면 무샤라프를 지지하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Q)는 14%의 지지율로 3개 정당 중 꼴찌였다.
또 미국 비영리기구 '테러 없는 내일'(Terror Free Tomorrow)의 조사에서도 PPP가 36.7%로 지지율 선두, 샤리프의 PML-N이 25.3%로 2위를 기록한 반면, PML-Q는 12%로 3위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 해 12월 선거유세 도중 암살된 부토 전 총리에 대한 동정표가 PPP로 향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정권연장 등을 위해 동원한 무샤라프의 무리수에 대한 비난 여론도 존재하고 있다.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해 8년 넘게 철권을 휘두른 무샤라프 대통령은 작년 3월 재선에 걸림돌이 되는 이프티카르 초우더리 전 대법원장을 해임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고, 7월에는 이슬람 급진 '랄 마스지드(붉은 사원)'를 유혈 진압 수백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이슬람권의 '공적'이 됐다.
또 10월 대선 압승한 무샤라프는 자신의 후보자격에 대한 법정공방이 불리하게 결론날 것을 우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임시헌법령(PCO)를 발동한 뒤 준계엄 상태로 재선을 밀어붙였다.
이런 일련의 '정치 도박'으로 악화한 여론은 무샤라프가 재선 확정후 마지못해 벗은 군복이나 번번이 지켜지지 않은 민주화에 대한 약속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와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최근 부토의 PPP와 샤리프의 PML-N이 총선 승리를 전제로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하고, PPP 고위 당직자 입에서 총선후 무샤라프를 제거하겠다는 발언이 나오는 실정을 감안하면 야당의 승리할 경우 무샤라프에 대한 탄핵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 총선 후 군부의 움직임은 = 파키스탄의 향후 정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군부의 정치 개입 여부다.
파키스탄은 1947년 건국 이후 60년 역사 중 30년 이상을 군부치하에 있었고, 무샤라프 역시 지난 해 11월 군복을 벗을 때까지 군(軍) 참모총장직을 겸임했다.
뿌리깊은 군부 통치로 인해 아직도 정부 주요 부처 요직에는 군인들이 배치돼 있고, 국가 경제의 근간도 군부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부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부토와 샤리프 두 전직 총리의 당(黨)이 총선에 승리해 '문민 정부'의 간판이 내걸리는 상황은 군부에게 결코 달갑지 않은 상황임에 분명하다.
특히 테러세력으로 부터 선거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전국에 투입한 8만1천명의 군 병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샤라프 대통령이 재선 직전 군복을 벗은 상태인데다, 또 그로부터 군 지휘권을 물려받은 파키스탄 정보부(ISI) 수장 출신의 아시파크 페르베즈 키아니가 군의 정치적 중립에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은 파키스탄 민주세력을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키아니는 지난 11일 정보기관을 제외한 정부부처에 파견됐던 300여명의 군인들을 모두 철수하기로 하고, 이 중 반부패기구인 국가책임국(NAB) 등에 파견된 장성급 24명 등 150여명에 대해 즉각 철수 명령을 내린 바 있다.
하버드대학의 군사분석가인 나심 제라 교수는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군 참모총장으로 키아니가 취한 조치를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헌법에 어긋나는 것을 원치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자신을 군 최고지휘자 지휘를 부여한 무샤라프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키아니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 '선거 조작' 논란 속 야당 패배시 정국 '요동' = 한편 이번 선거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나 여당에 의한 조직적인 선거 결과 조작 가능성이다.
지난 15일 미국의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말리크 카윰 파키스탄 법무장관의 육성이라며 공개한 테이프에는 조직적인 선거 결과 조작 계획이 실행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해 대선에서 후보자격 관련 규정을 고치는 등 무샤라프의 수족 노릇을 했던 선거관리위원회가 총선에서 철저한 중립을 지키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국무부 역시 중립적이지 않은 선관위 감시하에서 일정부분 선거조작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또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미국발전센터(CAP)는 최근 AP통신에 "선거에 참여자들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좋은 선거가 치러지지 않을 수 있다"며 "미국은 흠집이 큰 선거 결과와 이에 따른 폭력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파키스탄 정국은 다시 한번 큰 격랑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
암살된 부토에 대한 동정여론과 반(反) 무샤라프 정서를 바탕으로 PPP와 PML-N 등 야당들은 벌써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현 정부에 의한 선거결과 조작이 아니고는 자신들이 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선거 조작 등에 의해 자신들이 패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거리로 나서 반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결의했다.
반면 이번 선거를 위해 32만명의 경찰과 8만명이 넘는 군 병력을 동원한 무샤라프는 선거 결과를 거스르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조작에 의해서든 아니든 최근 여론조사와는 다른 선거 결과가 나올 경우 지난 연말 부토 암살 이후 벌어진 폭동과 같은 끔찍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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