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지난해 5월 15일이었다.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효종대왕릉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를 지낸 참석자들이 재실(지난해 11월 보물 지정) 앞마당에서 숯불구이로 버젓이 점심식사를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지역 유지 등 관계인사들이 참석해 잔치 한마당을 펼쳤다. 재실에서 2m도 안 떨어진 곳에 액화석유(LP) 가스통까지 갖다 놓고 음식을 만들었다니 그 놀라운 화재 불감증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주요 사적지에 인화물질은 물론 취사도구도 반입할 수 없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실제로 문화재청 훈령도 이를 금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화재청장이 이를 어겨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청은 재실 음식 제공은 관행이라며 이해를 구한 뒤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유 청장 재임 중에 해마다 굵직한 문화재 화재사건이 발생해오던 터라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2005년 4월 5일에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가 산불에 휩싸여 보물 479호인 동종이 소실됐고, 이듬해 4월 26일에는 이번 숭례문 화재 용의자인 채모 씨가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놓았다. 그리고서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원 화성의 서장대가 방화로 화를 입었다.
잇따른 화재에도 불구하고 사후 대처는 매우 안이했다. 소방방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발 방지를 다짐했지만 숭례문 화재에서 드러났다시피 허사일 뿐이었다. 그 많은 예산을 들여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화재가 결과적으로 개인적 명예를 위해 활용된 셈이 되기도 했다는 점이다. 낙산사 동종의 경우 훼손된 지 1년 6개월여 만인 지난해 11월에 복원됐으나 동종 내부에 유 청장의 이름이 새겨진 사실이 드러나 말썽이 됐다. 망실된 동종의 최고관리책임자인 당사자가 복원된 동종에 자기 이름을 올려 후대에 남기고자 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보기에 따라 하나의 치적으로까지 비치기 때문이다. 동종에는 지금도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일국의 문화재청장에 어울리지 않은 부적절한 언행이 툭하면 돌출해 입맛을 씁쓸하게 했다. 지난해 8월 문화재청이 정부예산으로 유 청장의 개인저서를 대량구입해 문화재청 기념품으로 활용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번에는 휴가를 겸한 외유성 출장을 공무 출장비와 민간 경비지원으로 부인과 함께 다녀와 물의를 빚고 있다. 이번 외유성 출장에는 자그마치 1천6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일반적인 경우 8박9일짜리 유럽 여행의 경우 1인당 300만원 안팎이 고작이다.
숭례문 화재참사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역사는 물론 유 청장 개인사로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자 비극이 될 것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뒤 "국보를 망실한 처리한 책임이 문화재청장에 있다"며 참담함과 부끄러움을 나타냈으나 만시지탄일 뿐이다.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책임이라고 비통해하며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그의 심경이 한편으로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화재는 문화재청 등 관계당국의 총체적 방심과 부실관리가 부른 인재라는 점에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 시대와 10위권 경제대국을 외쳐온 터에 문화의식은 관계당국부터 낙제점을 면치 못해서다. 또 정권 말기의 모럴 해저드가 겹치지 않고서야 이런 참담한 결과가 어찌 생겼겠는가싶다.
불(火)를 경시하다가 화(禍)를 부르는 안일함을 또다시 되풀이할 건가. 사건 사고가 터지면 잠시 소란을 떨다가 유야무야 제자리로 돌아가버리고 마는 후진적 관행을 언제까지 답습할 건가. 소는 비록 잃었더라도 다음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외양간을 철저하게 고치는 통회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사라진 숭례문의 소리없는 외침이기도 하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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