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용사에서 세계적 석학된 린이푸 인생유전>

  • 등록 2008.01.20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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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린이푸(林毅夫.56) 베이징(北京)대 교수가 세계은행 선임 부총재로 발탁될 것이 유력시되면서 그의 인생유전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베이징대학 중국경제연구중심(CCER) 주임인 린 교수는 수십년간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경제학의 새 이론을 발표하거나 중국 경제를 이해하는 학술 논문을 발표,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석학으로 꼽힌다.
중국 안팎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린 교수는 사실 린정이(林正誼)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만군 출신의 `귀순용사'로 지금껏 대만에서 수배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만 이란(宜蘭)현 출생의 린 교수는 모친이 행상을 나가는 가난한 집안 형편속에서도 뛰어난 머리와 출중한 학업성적으로 명문 대만대 농업공정과에 입학한다.
학생 군사훈련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인 그는 대만대 출신 엘리트를 군 간부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군 당국으로부터 군에 남을 것을 요청받고 장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국방부장과 행정원장을 차례로 지낸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인물이기도 했다.
군의 지원으로 대만 정치대학에서 기업관리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78년 중국과 면한 대만의 최전방 진먼(金門)도 주둔군의 연대장으로 파견됐다. 대중(對中) 선전전이 벌어지는 최일선으로 외국 손님들이 항시 들르는 시찰 코스를 군 최고 엘리트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5월 당시 린정이 대위는 적국 중국에 투항한 배신자가 됐다. 대만군 병력배치도 등 기밀문서를 지니고 야음을 틈타 농구공 하나에 의존, 2㎞ 떨어진 중국 대륙으로 헤엄쳐 넘어간 것이다.
당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로 개혁.개방 방침이 확정되면서 정책 중심을 군사에서 경제로 전환하고 양안관계도 중국의 진먼도 포격전 중단선언 등으로 서서히 화해기류가 조성되는 시점이었다.
린 교수는 지금도 중국 망명의 동기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치 않고 있으나 당시 대만 정국의 억압적 분위기도 한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린이푸로 이름을 바꾼 그는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교환교수로 와있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어도어 슐츠 교수의 지원으로 미 시카고대학에 유학,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예일대 박사후 과정까지 마친 그에게 미국 대학들의 교수직 제의를 쏟아졌지만 그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들어선 중국경제 연구를 위해 귀국의 길을 택했다.
1994년 베이징대학에 중국경제연구소를 설립, 줄곧 소장으로 일해온 그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브레인으로 여러차례 중국의 5개년 개발계획의 입안을 맡아오면서 중국 경제학계의 거두로 자리잡고 있다.
망명 당시 린정이 대위를 실종 사망으로 처리한 대만군은 2002년에서야 그의 망명 사실을 확인하고 탈영 및 적국 투항 혐의로 수배령을 내려놓고 있다.
린 교수는 수배령 소식에 "과거 행위는 내 양심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나중에 역사가 자유로이 판단할 문제"라며 여전히 이란현에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경제학자로 지명되면 린 교수는 앤 크루거, 스탠리 피셔, 로렌스 서머스, 조지프 스티글리츠, 니콜라스 스턴 등 서방 학자들이 주름잡던 국제 경제학계에 개발도상국 학자로는 처음으로 석학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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