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 서화가 안준영 씨, 序∼9章 목판 복원
(전주=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찬란하게 피고 열매가 많습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이지 아니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장(章))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 '용비어천가'의 목판이 '조선 왕조의 뿌리'인 전북 전주에서 복원된다. 용비어천가는 현재 책으로만 전해질 뿐 목판은 소실된 상태다.
16일 전주한옥마을 공예명인관. 목판 서화가이자 이산각연구소장인 안준영(51) 씨가 작업실 한 켠에 마련된 작업대에서 크고 작은 20여 개의 조각칼을 번갈아 손에 쥐고 정성 들여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을 새기고 있었다.
이번 목판 복각(復刻) 작업은 국립국어원이 추진하는 '한글 문화유산 판각 및 복원 사업'의 첫번째 사업으로, 안 씨는 모두 10권(125장)으로 된 광해본을 모본(母本)으로 이 중 제 1권(서(序)∼9장)을 이달 말까지 복원하게 된다. 양면으로 복각해야 하는 목판은 모두 32장으로 책으로는 130쪽 가량의 분량.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 인고의 작업"이라고 말을 꺼낸 안 씨는 목판에 새긴 글자가 쉽게 파손되지 않도록 나무의 성질과 결을 읽어서 '단칼에' 조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안 씨는 목판은 오래 보관하고 여러 번 탁본을 해도 글자가 뭉그러지지 않도록 견고하고 딱딱한 나무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번 작업에는 산벚나무를 선택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목판에서 글자가 새겨지는 면은 가로 37㎝, 세로 26㎝(전체 가로 55㎝, 세로 29㎝)로 보통 한 면에 적게는 400자에서 많게는 700자가 새겨지게 된다.
특히 용비어천가의 경우 한글로 된 원문 다음에 한역시(漢譯詩)와 언해(諺解)가 이어지는데 크기 1㎝ 미만의 작은 한자도 있어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구한다는 게 안 씨의 설명이다.
"활자가 좋은 한지와 먹을 만나 인쇄돼 나올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안 씨는 보통 새벽 3∼4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하루에 10시간 가량 나무와 먹 냄새를 맡으며 지낸다.
이렇게 목판이 완성되면 이산각연구소 연구원인 안 씨의 부인 송희정(48) 씨와 딸 은주(28) 씨가 100% 닥나무로 제작된 전주 한지를 이용해 목판을 인쇄한다.
다음 작업은 제본(製本). 목판으로부터 인쇄된 한지를 접어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른 뒤 다섯 곳에 구멍을 뚫어 면사로 묶는, 일명 '오침안정법'을 이용해 한지를 한 권으로 엮는데 이렇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한 단계씩 거치고 나면 한 권의 책이 마침내 복원되는 것.
안 씨는 이번 작업을 통해 모두 150부의 용비어천가를 만들 예정이며 이렇게 완성된 목판과 책은 국립국어원에서 보관하게 된다.
이미 작업이 끝난 1권의 앞부분은 작업실 맞은 편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관광객 등에게 선보이고 있으며 오는 19일과 26일에는 목판화 찍기 무료 체험 행사도 열린다.
안 씨는 "많은 한글 판본을 통해 한글을 널리 알리고 사용할 수 있게 한 목판 인쇄 문화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소중한 열쇠"라며 "이번 작업이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보다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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