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어느 내부순환도로 나들목. 승용차들이 도로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길게 늘어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옆차선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얌체 차량 한 대. 호시탐탐 끼어들 기회만 엿본다.
줄을 선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백미러로 이 수상한 접근을 육감으로 알아챈다. 그리고 빈 틈을 주지 않으려 앞차 꽁무니에 차량 대가리를 바짝바짝 붙인다. 얌체 운전자 왈, "어유, 세상 인심이 왜 이렇게 야박하냐!"
하지만 빈 틈은 어디나 있기 마련. 한 운전자가 잠시 방심한 사이에 곁눈질하던 얌체는 이를 놓칠세라 잽싸게 파고든다. 대가리를 들이민 이상 진입에 성공. 운전자들은 분하다는 듯 가슴을 쳐보지만 게임은 벌써 끝난 일. 또 얌체 왈, "참 고약하네. 그거 하나 끼어주면 어디 병이 나, 세상이 뒤집어져?"
더 가관은 그 다음. 한참이 지나도록 꽉 막힌 차량들은 좀처럼 나아가질 못한다. 속이 탄 얌체. 한데 잠시 뒤 또다른 얌체가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몇 뼘 될까말까한 얌체 앞 빈틈을 잽싸게 가로챈다.
화들짝 놀란 얌체. 자신이 그랬듯이 대가리를 들이민 이상 얌체는 또다른 얌체의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갑을관계가 뒤바뀌어 분기탱천하는 얌체 왈, "뭐 저런 놈이 있어? 무식한 것 같으니라구! 국민학교도 아마 뒷구멍으로 나왔을 거야. 어유, 징글징글해!"
그것도 부족했을까? 얌체는 결정타로 한 방 더 날린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이래서 뭐가 안된다니까. 공중도덕들이 통 없으니, 원…. 질서의식이라곤 빵점이야 빵점!"
우스개같은 이런 풍경들은 왜 생길까?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알게 모르게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결과지상주의 때문이 아닌가싶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거다. 목표 달성하고 결과 좋으면 그만이지, 과정과 수단이 '뭐 그리 대수냐'며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버리는 풍조다.
일방통행식 결과지상주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사회일수록 기승을 부린다. 물론 이는 단시일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한국이 경제대국이 되기까지는 1960년대에 본격화한 성장과 개발 일변도 정책이 있었다. 박정희 정권 등 이른바 권위주의정권들은 흡사 군작전하듯 국정을 강력히 밀어붙여 고성장가도를 달리게 했다.
하지만 과정과 수단이 경시된 결과지상주의는 필연코 부실, 부정, 부패 등 어두운 그림자와 볼썽사나운 후유증을 낳았다. 이는 교량 붕괴, 건물 화재 등 각종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불공정게임에 대한 냉소가 커지면서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는 문화도 형성되지 못했다.
골프장에서 공을 룰대로 홀컵에 넣지 않고 손으로 슬쩍 집어넣는다면 누가 그 결과에 따를까? 운동회의 릴레이경주 때 트랙을 돌지 않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결승선에 골인한다면 누가 그 주자에게 박수를 쳐줄까? 시험 등 소정의 절차를 건너뛴 채 회사 입사가 가족의 청탁으로 암암리에 이뤄진다면 누가 그 정당성을 인정해줄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선 이런 부류의 사례가 자주 목격된다. 지난해의 사회현상을 압축하는 용어가 '거짓말'이었음은 무얼 시사할까? 가짜학위 파문의 신정아사건 등은 과정과 수단을 업신여기고 결과와 목적을 거머쥔 '어둠의 세력'이 사회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최근 불거진 대학의 편입학 비리 의혹도 그 연장선에서 충격을 던진다. 일류대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학에서 학교 고위관계자들까지 비리에 연루됐다니 더 놀랍다.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좀더 지켜봐야 하나 경제대국이라는 외형에 견줘 우리 사회의 도덕지수가 얼마나 낮은지 말해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개발과 성장을 쌍두마차로 한 결과지상주의의 질주는 당분간 그치지 않을 것 같다. 국가적ㆍ시대적 화두가 되다시피한 '경제'는 이를 위한 견인차다. 1970년대의 '잘 살아보세' 구호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잘 살아보세'로 맹위를 떨친다.
사회가 진정으로 선진화하려면 이젠 달라져야 한다. 과정과 수단의 정당성도 확보해 결과와 목표의 완결성을 꾀해야 한다. '잘 살아보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잘 사는 게 뭔지' '왜 잘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를 성찰할 때가 됐다. 서울을 가도 모로 갈 게 아니라 제대로 가자는 것이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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