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대륙간) 챔피언 최요삼이 결국 우리 곁을 떠났다. 살아서는 `복싱 챔프'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줬고, 죽어서는 폐와 심장, 췌장 등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말기 환자 6명의 생명을 구하고 혈관과 연골이 필요한 수십 명의 환자들에게 새 삶을 찾게 해줬다. 이보다 아름답고 값진 생애는 없을 것이다.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모든 것을 주고 간 그대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최요삼은 지난해 12월25일 WBO 대륙간 타이틀(동양챔피언급) 1차 방어전에서 헤리 아몰(25ㆍ인도네시아)에게 판정승을 거둔 뒤 뇌출혈 증상을 일으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해 왔다. 1982년 11월13일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레이 맨시니(미국)에게 14회 KO 패한 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한 김득구에 이은 `25년 만의 비극'이다. 20살에 권투를 시작한 최요삼은 1999년 10월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으로 등극한 뒤 4차 방어전에서 타이틀을 잃었으나 불굴의 정신으로 재기해 작년 9월 WBO 대륙간 챔피언이 됐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오뚝이'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다.
최요삼의 뇌사를 계기로 프로복싱의 안전사고 대비가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났다. 경기 전 감기ㆍ몸살, 체중 감량 등으로 인해 잠을 전혀 못자는 등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메디컬 데스트에서는 `정상 판정'을 받았다. 메디컬 테스트라고는 하지만 개안(開眼) 검사와 혈압ㆍ맥박을 측정하는 게 고작이다. 한국권투위원회는 경기 승인 과정에서 선수들의 병력이 포함된 진단서 제출도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종기 격투기처럼 여러 분야의 전문의들이 세밀하게 체크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KO율을 높이기 위해 경량급 경기에서 현재의 8온스 글러브 대신 솜이 덜 들어간 6온스 글러브를 끼우게 하는 계획도 백지화해야 한다. 최요삼은 경기장에서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지정병원까지 가느라 시간을 허비했다고 한다. 스포츠 응급 치료 보완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최요삼은 권투선수로서는 `환갑'에 해당하는 35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여 왔다. 한국 남자 프로복싱은 지인진이 종합격투기 K-1 진출을 앞두고 지난해 7월 WBC 타이틀을 반납한 이후 `노챔프 시대'를 맞고 있다. 1970∼80년대 홍수환ㆍ장정구ㆍ유명우 등 세계 챔피언을 잇따라 배출하며 `국민 스포츠'로 사랑받던 프로복싱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프로복서의 수가 줄고 걸출한 스타 선수의 명맥이 끊기면서 야구ㆍ축구ㆍ농구 등 프로 스포츠에 밀려났기 때문이다. 기본 생계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열악한 처우는 복싱 유망주들을 더욱 링 밖으로 몰아냈다. 가짜 복서 및 선수 바꿔치기 파문, 대전료 착복 등의 잡음도 프로복싱을 몰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아마복싱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 대표 7명이 모두 조기 탈락해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권투계는 힘을 모아 체계적인 선수 발굴 등 중ㆍ장기 권투 진흥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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