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삼은 누구인가>

  • 등록 2008.01.02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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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복싱을 하느라 고생만 많이 하고...운이 없었어요"
최요삼은 호적에는 1972년 3월1일생으로 올라 있지만 실제로는 1973년 음력 10월16일 전북 정읍에서 고(故) 최성옥씨와 오순희씨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 둘째형 요석씨가 운동 삼아 다니던 용산의 체육관에 따라갔다가 복싱과 인연을 맺어 아마추어 복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어릴 때부터 겉으로는 늘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생각이 많고 심지가 굳은 아이였다. 큰누나 요연(40)씨는 "어릴 때부터 혼자 신문 배달을 다니기도 하고, 강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프로 선수로 나선 것은 20살 때인 1993년 7월이었다. 13연승을 달린 뒤 1995년 한국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에 첫 도전했지만 판정패했다.
그는 패배의 고통을 뼈를 깎는 듯한 자기 단련으로 이겨냈다.
요연씨는 "체중을 뺄 때에는 전혀 못 먹는다"며 "한번은 신 맛이 나는 껌을 씹는 걸 보고 그거라도 씹는가 보다 했더니 실제로는 껌을 씹어서 침이 나오면 뱉어내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음해 동급 동양타이틀을 거머쥔 그에게 이번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여파가 밀려왔고, 이때엔 복싱 인기도 급격하게 식어갔다.
1999년 10월17일 사만 소루자투롱(38.태국)을 판정으로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이 됐지만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3년간 방어전을 간신히 네차례 치렀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턱뼈는 챔피언이 된 경기에서 부서졌다. 이 때 다친 턱은 작년 크리스마스 경기 때 결국 치명상으로 이어졌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큰 인간적 배신감에도 시달렸다.
그가 고통의 나락에서 빠져나오도록 독려한 게 바로 전광진 전 매니저, 구인회 밀리오레 발전위원회 위원장, 김승권씨, 조민 풍산체육관 관장 같은 이들이었다. 동생 경호씨는 "다시 의욕을 찾고 복싱에 도전하게 된 것은 누구보다 광진이 형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요삼이 일기에서 `그분'이라고 표현한 것도 바로 전씨 등이었다.
이들은 최요삼이 2002년 7월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르세(29.멕시코)에게 타이틀을 잃은 뒤 2003년과 2004년 잇따라 세계 정상 도전에 실패하며 가장 힘들던 시절을 보낼 때 그의 곁을 지켰다.
이들이 소박한 소망은 2005년 6월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최요삼이 언젠가 다시 챔피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최요삼은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2006년 12월 재기전부터 연승 행진을 벌인 끝에 작년 9월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올랐다. 내년 4월 미국에서 세계챔피언이 된 뒤 명예롭게 은퇴하고 나면 `선수들을 위하는 프로모터가 되겠다'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벌어진 1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25.인도네시아)의 오른손 스트레이트 맞고 쓰러진 뒤 다시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바람에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됐다.
그를 아끼는 이들은 `요삼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전씨는 "내가 그때 링으로 다시 올라가라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아니냐"며 "미안하다, 요삼아"라고 말했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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