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파키스탄 정국의 핵심 축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27일 암살되면서 혼미를 거듭해온 파키스탄 정국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비상사태 정국을 빠져나온 지 불과 2주도 안돼 터진 부토 암살 사건으로 총선을 눈앞에 둔 파키스탄 정국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
◇ 끊이지 않았던 암살위협…테러 배후는 = 부패 혐의로 실각한 뒤 지난 1999년 자발적 망명길에 올랐던 부토는 지난 10월18일 8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부토의 귀국 계획이 구체화되던 순간부터 암살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미국의 중재 아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분점' 협상에 나섰다는 점이 탈레반 등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고 있는 무장세력들을 자극했던 것.
지난 10월12일에는 아프간 국경지대의 탈레반 사령관인 바이툴라 메수드가 귀국길에 오르는 부토를 자살폭탄 테러로 환영하겠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메수드는 당시 인터뷰에서 "무샤라프와 부토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결코 우리가 포용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우리 테러리스트가 부토의 귀국을 환영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 당시 파키스탄의 정보기관들도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 적어도 3개 무장단체의 테러 기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경고는 부토 귀국 당일 축하 행렬을 겨냥한 폭탄테러로 현실화했다. 당시 부토는 차량 안으로 몸을 숨겨 가까스로 화를 면했지만 부토 지지자 등 140여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참사가 빚어졌다.
파키스탄 군부 앞마당인 라왈핀디에서 벌어진 이번 부토 암살의 배후에 대해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부토가 귀국 이후에도 탈레반 등 무장단체를 맹비난해온데다, 무장단체들도 미국에 우호적인 부토를 끊임없이 표적으로 삼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탈레반 등이 이번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만 일부 부토 지지자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눈길을 보내고 있다.
◇ 총선 정국에 미칠 파장은 = 그 배후가 누구든 이번 부토의 암살은 비상사태 국면을 접고 총선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파키스탄 정국에 메가톤급 변수가 됐다.
지금까지 파키스탄 총선 판도는 친(親) 무샤라프 지지세력인 여권, 총선을 통한 정권교체를 표명한 부토와 샤리프 두 전직 총리의 거대 야당들, 그리고 총선 불참과 함께 총선 저지에 나선 군소여당 등 크게 3개 그룹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부토는 비상사태 선포 후 무샤라프를 비난하며 야권과 연대해 총선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부토는 야권의 총선 공조 무산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총선 참여의 뜻을 굽히지 않아, 파키스탄의 진정한 민주화보다는 총선을 통한 총리직 복귀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사건으로 파키스탄의 치안 상황이 극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토 암살 직후 파키스탄 전역에서는 그의 지지자 수백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차량 등에 불을 지르며 폭동 수준의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가 격화될 경우 1월8일로 예정된 총선 자체가 연기되거나, 정부가 치안유지를 이유로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카드를 빼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피한다 하더라도 부토 암살 사건은 내달 치러질 총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향후 이어질 부토 암살의 책임 공방의 화살이 여권과 야권 가운데 어느 쪽을 겨냥하느냐에 따라 총선 표심도 급격하게 요동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meolakim@yna.co.kr
(끝)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