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합뉴스) 홍동수 기자 = '사상 최악의 물난리', '물폭탄 맞은 제주 아수라장', '제주에서 홍수가 터지다니'...
9월 16일 낮 제11호 태풍 '나리(NARI)'가 제주를 강타한 직후 상당수의 언론은 태풍이 몰고 온 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록적인 폭우로 제주시내를 관통하는 4대 하천이 모두 범람하면서 시내는 온통 물바다로 변했고, 급류에 휩쓸려 13명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재산피해액도 1천300억원이 넘었다.
'홍수 걱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제주도민들에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물난리를 겪게 한 태풍 '나리'는 이상기후와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고, 하천관리 등 치수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 태풍 '나리'의 위력
제주를 강타할 무렵의 태풍 '나리'는 중심기압 960hPa, 순간최대풍속 52m/s, 반경 180㎞로, 세력은 강하고 크기는 작은 '강.소형' 태풍이었다. 하루 전인 15일 기상청이 예보한 16일 예상강수량은 최고 150㎜.
물빠짐이 좋은 제주에서는 비 피해보다 강풍 피해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6일 낮 12시를 전후해 제주를 관통한 태풍 '나리'는 불과 2-3시간 사이에 시간 당 100㎜ 안팎의 폭우를 퍼부었다. 한라산에서 관측된 시간당 강수량은 150㎜가 넘었다. 1일 강수량의 대부분이 단시간에 쏟아진 것이다.
제주도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한 태풍은 제주를 관통할 무렵 북풍 계열의 강풍을 몰아치면서 한라산 관음사 543㎜, 제주시 420㎜ 등 한라산 북부지역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를 쏟아부었고, 대부분의 기상관측 포인트에서 기상관측 이래 1일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의 1일 최대 강수량 267.5㎜의 2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소방방재청 산하 국립방재연구소가 '1천년 이상에 한 번 발생할 확률'로 분석할 만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한라산 정상에서부터 제주시 해안 저지대까지 한꺼번에 쏟아진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호우로 제주시를 관통하는 산지천, 병문천, 한천, 독사천 등 모든 하천이 범람했고, 홍수를 모르고 지내던 도민들에게 물난리의 파괴력을 실감케 했다.
◇ 피해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명피해는 모두 범람한 하천 주변에서 급류에 휩쓸리면서 발생했다.
제주시 외도동 월대천 옆 조립식 건물이 통째로 급류에 휩쓸리면서 물을 퍼내던 김모(54)씨 부부가 변을 당했으며, 침수되는 주택에서 빠져나오거나 급류를 건너다가, 또는 갑자기 집 안에 들이닥친 물에 갇혀 희생되는 등 예기치 않은 사고들이었다.
공식 집계된 재산피해액은 모두 1천307억4천600만원.
공공시설 피해는 도로 및 교량 78건 74억9천500만원, 하천 69건 375억9천700만원, 상ㆍ하수도 68건 53억6천500만원, 항만ㆍ어항 18건 21억4천700만원, 학교 84건 52억4천900만원 등 모두 1천878건에 974억6천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사유재산 피해는 주택파손 86건 17억4천만원, 비닐하우스 162억4천900만원, 수산 시설 110건 38억8천300만원, 축사 125건 14억7천700만원, 선박 파손 31건 6억8천600만원, 농경지 유실 381건 70억4천600만원 등 모두 332억8천400만원으로, 강풍에 따른 비닐하우스 피해가 절반을 차지했다.
주택침수 3천75건과 농경지 침수 1만3천535ha, 1천여대로 추산되는 자동차 파손 등은 제외된 것이다.
◇ 복구
응급복구작업은 뻘바다를 이룬 제주시 재래시장과 주택가 등 범람했던 하천 주변에서부터 시작돼 20일 동안 지속됐다.
포항주둔 해병 1천300명과 육군 공병단 200명, 특전대대 230명, 해군 220명 등 2천여명과 제주방어사령부 500명 등 장병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초기 '신속 복구' 큰 역할을 했다. 군 장비도 11종 986대가 투입됐다.
다른 지역 장병이 제주에 대거 상륙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복구작업에 투입된 장병은 하루 평균 1천489명씩 연인원 2만8천291명. 공무원과 경찰,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10월 5일 응급복구가 마무리될 때까지 모두 15만7천926명이 투입됐다.
9월 24일까지 9일 동안은 응급복구 1단계 작업으로 침수주택 및 상가 정비에 집중됐고, 29일까지 사흘 동안은 2단계 하천 퇴적물 정비, 10월 5일까지 3단계로 비닐하우스 및 양식장 정비 순으로 중점을 둬 진행됐다.
붕괴된 하천 제방, 균열된 다리, 급류에 휩쓸린 농경지 토사, 파손된 비닐하우스 등 응급복구 영역을 벗어난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9월 20일 제주도 전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정부는 10월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비 1천255억3천만과 지방비 344억2천200만원 등을 포함하는 1천606억9천500만원 규모의 피해복구 계획을 확정했다.
◇ 대책
태풍 '나리'가 남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 기록적인 폭우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무분별한 하천복개와 난개발이 수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제주도가 기존의 수해방지종합기본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나섰다.
제주도는 내년 말까지 완료할 계획으로 최근 '하천 수계별 유역종합치수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했다.
용역 과업지시서 설명에서 제주도는 "물빠짐이 좋은 제주도는 강우로부터 안전지대로 여겨져왔으나 사상 유래 없는 집중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됨에 따라 기존 계획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과업지시서에서 도내 27개 하천 총연장 257㎞ 354㎢를 6개 권역, 13개 수계로 나눈 뒤 "지금까지의 제방 위주 치수대책에서 벗어나 저류지 등 구조적 대책과 홍수경보 등 비구조적 대책을 망라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제, 태풍 '나리'로 인해 발생한 하천별 홍수피해 현황과 원인, 문제점을 지역별로 세밀하게 분석토록 했다.
또 "수계의 주요 지점별로 적절한 홍수대책 목표를 제시하고, 정책입안자의 정책판단이 용이하도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고품격의 치밀함과 정교함'을 갖춰 발주처에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항구적인 홍수예방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ds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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