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비리 사정한파 불구 대형발굴 줄이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2007년 한국 문화유산계는 먹구름이 엄습한 해로 기록됐다.
발굴현장을 국세청과 감사원이 들이치더니 급기야 검찰이 발굴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칼을 빼드는 바람에 한 해 내내 사정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하지만 이에도 아랑곳없이 고려 태안선 발굴을 비롯해 놀랄 만한 조사성과는 줄을 이었다.
◇발굴비리와 매장문화재 제도개선 = 이른바 발굴비리 사정 한파가 고고학계를 엄습할 것이라는 기미는 이미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국세청이 세무감사에 나서고, 감사원이 매장문화재 제도 개선을 앞세우며 전국 발굴조사기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기 때문이었다.
발굴비리 사정 한파의 진원지는 호남이었다. 순천지검이 전남지역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원장과 조사연구실장을 발굴비리 혐의로 구속하자, 전주지검에서도 전북지역 발굴기관 두 곳을 조사해 전남지역과 마찬가지로 원장과 조사연구실장을 구속하거나 불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수억원을 편취했다는 기소내용은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 등을 들어 벌금 2천만-3천만원을 선고했다.
발굴비리 혐의는 조사원과 조사장비 중복투입이었다. 이는 같은 조사원, 같은 조사장비를 동시에 두 군데 이상의 발굴현장에 투입된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행위로 고고학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밀려드는 발굴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웠다. 결과로만 보면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반면 법원은 이를 고려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후 수사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경주지역 5개 발굴전문 조사기관 책임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충청지역 한 전문조사기관은 편취 액수가 20억원을 넘는다 해서 그 책임자가 구속기소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비록 1심 판결이긴 하지만 발굴비리로 실형이 선고된 첫 케이스로 기록됐다.
검찰수사는 발굴대란을 불렀다. 조사원과 조사장비 중복투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전문조사기관이 감당할 수 있는 발굴건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데다, 각 조사전문기관 역시 '준법 발굴'을 선언함에 따라 가뜩이나 밀린 발굴조사 민원은 폭증 사태를 빚었다.
문화재청은 이런 상황에서 발굴민원 해소를 표방하며 매장문화재 제도 개선안을 들고 나왔다. 골자는 사업시행에 앞선 강제적인 문화재 지표조사 대상 면적을 현행 1만㎡에서 3만㎡로 상향 조정하고, 1만㎡ 이하 면적에 대한 발굴허가권은 지자체에 위임한다는 것이었다.
고고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문화재 지표조사 면적 1만㎡를 오히려 축소 조정해야 할 판인데 이를 확대하는 것은 제도개선이 아니라 제도개악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그 조사허가권을 개발논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지자체장에게 위임해서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올해의 10대 발굴 = 아직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2007년 한 해에도 1천 건이 넘는 매장문화재 조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문화재청은 예상한다.
몇 년째 계속되는 한 해 발굴 1천건 시대를 이끈 가장 큰 축은 사실 참여정부였다.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중심 복합도시 등 초대형 국토개발계획으로 현재의 한국고고학계가 수치상으로는 도저히 그 발굴조사를 감당할 수 없는 시대를 연 것이다.
올해 10대 발굴 중 하나로 꼽아야 할 초대형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바로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였다는 사실은 향후 몇 년간 굵직한 발굴이 정부 주도 대규모 개발지에서 이뤄질 것임을 예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형 백제 횡혈식 석실분과 함께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 △문경 고모산성 지하 목곽 유적 △경주 덕천리 초기 신라시대 공동묘지 유적 조사 △부여 왕흥사지 백제 창왕 명(昌王銘) 사리함 발견 △고려 태안선 고려청자 인양 △남한산성 통일신라시대 초대형 건물터와 초대형 기와 대량 발굴 △남산 열암곡 통일신라시대 불상 발견 △서울 은평 뉴타운지구 조선시대 공동묘지 발굴 등을 올해의 10대 발굴로 꼽을 수 있다.
이 중 고려 태안선 발견은 주꾸미 때문에 내내 화제가 됐다. 즉, 주꾸미 어부가 주꾸미를 잡으려고 던진 그물에 주꾸미 대신 고려청자가 걸림으로써 시작된 수중발굴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2만2천점을 상회하는 각종 청자를 그득 실은 고려시대 선박이 그대로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경남고고학연구소가 조사한 김해 구산동 고인돌은 덮개돌 무게만 무려 350t에 이르러 현재까지 보고된 고인돌 덮개돌 중 최대 중량으로 기록됐으며, 중원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고모산성 지하 목곽은 남북 길이 12.3m에 폭 6.6-6.9m에 이르는 상.중.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식 목재구조물이 그 기능은 종잡기 힘든 상태다.
경부고속전철 구간에 포함된 경주 덕천리 유적에서는 신라 모태가 되는 이른바 사로국 시대 사람들이 남긴 목관묘 11기, 목곽묘 122기, 옹관묘 65기, 토광묘 2기에 이르는 고분을 필두로 말과 호랑이 모습을 본뜬 청동제 혁대 버클인 마형대구(馬形帶鉤)와 호형대구(虎形帶鉤) 각각 1점, 오리모양 토기(鴨形土器) 등의 유물 2천여 점이 출토됐다.
부여 왕흥사지에 대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제8차 조사에서는 그 목탑지 심초석에서 청동제 함과 은병, 그리고 금병의 3중으로 만든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고, 그 청동사리함 겉면에서는 이를 백제 창왕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을 세운다는 내용의 명문(銘文)이 확인됐다.
경주 덕천리 유적에서 그 시작의 흔적을 알린 신라는 남한산성과 경주 남산에서 그 극성한 문화를 드러냈다. 남한산성 조선행궁지에 대한 토지박물관 조사 결과 1점당 무게 20㎏에 육박하는 초대형 기와가 수백점 출토되고, 그 인근에서는 이런 기와들을 지붕에 얹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건물터가 확인됐는데 이 건물터 또한 길이 53.5m x 폭 17.5m로 지금까지 국내에 보고된 삼국시대의 어떤 건물터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 남산 열암곡 통일신라 대형 석불상은 무게 70t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250×190×620㎝)에 부조한 마애불로서 실로 우연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견되어 마침내 그 휘황찬란한 자태를 공개했다. 오뚝한 콧날까지 완벽하게 남은 이 불상은 어느 때인가 마애불 전체가 붕괴되는 바람에 엎어진 상태로 발견됐는데, 부처님 콧날은 불과 5㎝ 차이로 암반과 마주하고 있었다.
은평 뉴타운 예정지에서는 조선시대 분묘 3천400기 가량이 확인됐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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