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일규 전 대법원장 `사법 민주화 토대' 마련>

  • 등록 2007.12.03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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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2일 별세한 이일규(李一珪.87) 전 대법원장은 사법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고, 한 평생 `소신있는' 재판을 강조한 법조계의 거목이었다.
1920년 12월 16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일본 간사이대 법문학부를 중퇴한 후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 1951년 판사에 임명됐으며 전주지법과 대전지법의 법원장을 거쳐 1973년 대법원 판사로 선임됐다.
고인은 1975년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에게 대법원이 사형확정 판결을 내릴 당시 13명의 법관 중 유일하게 "사실심리를 하지 않아 재판절차가 위법하다"며 사형반대 의견을 냈었다.
이들 8명은 대법원 판결 후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으며, 올해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재심 선고공판에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또 1983년 `송씨 일가 간첩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고인이 "피고인들에게 고문이 가해졌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자 안기부가 그의 옷을 벗기기 위해 한 달 여 동안 미행한 사실이 최근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발간한 최종 조사보고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고인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격하고 법원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1988년 7월 제10대 대법원장에 취임했으며 당시 이 대법원장의 취임은 정치적 대격변기였던 5공시대를 마감하는 때와 맞물려 민주화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큰 기대를 모았었다.
재야출신인 고인은 정기승 대법관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야당의 반대에 의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부결된 후 임명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고인이 대법원장에 취임한 뒤 5공시절 내내 일반사무실은 물론 판사실을 무상 출입하던 기관원들의 `행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으며,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하고 적부심과 보석의 활용을 강조하는 등 인권옹호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고인은 1990년 12월 정년(70세)을 맞아 37년간의 법관생활을 마감하면서 "재판의 독립은 타인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법관 스스로가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며 마지막까지 소신을 강조했다.
고인은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서일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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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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