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이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국내 무대 테크놀로지 부문은 굉장히 뒤떨어져 있어요. 아주 초라하죠."
무대 디자이너인 이태섭(53) 용인대 교수는 인터뷰 도중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이 교수는 요즘 국내 공연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무대장치를 디자인해내고 있는 중견 무대미술가 중의 한 사람. 그는 공공성을 띤 큰 극장들이 자체적으로 작품 제작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는 듯 하다.
"지금 좋은 공연장들은 많이 생기고 있어요. 운영예산도 꽤 되고 직원 수도 몇 백 명씩 되는 데도 있어요. 문제는 해외 작품을 손쉽게 들여와서 무대에 그대로 올리니 발전의 여지가 별로 없는 거예요. 작품을 직접 제작해 내야 공연장이 공연장 다운 거죠. 작품을 사다 하는 건 가장 쉬운 운영방법입니다."
그는 국립오페라단이나 국립발레단 같은 단체가 자기네 극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고 한다. 웬만한 나라 치고 국립공연예술단체가 상주극장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 "자기네 집이 있어야 집도 꾸미고 세간도 사고, 기술도 쌓는 거지 집이 없으니 기술이 축적될 여유가 없는 거지요."
공공성을 지닌 국.공립극장이나 민간이 만든 중.대형극장들이 좀더 공격적으로 작품을 자체 제작했으면 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그런 작품 수가 적을수록 무대 디자인이나 제작에의 참여기회는 상대적으로 없고 그만큼 무대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해외에서 오랜 기간 무대미술을 공부하고 온 사람 중에서도 일거리가 없는 경우가 많단다.
"대학로의 작은 극장들에서는 무대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무대미술을 해 볼 만한 데는 400-500석 규모의 중극장 정도는 돼야 해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일할 기회가 많지 않죠. 저같은 경우도 그런 큰 무대를 해 볼 수 있는 경우는 1년에 고작 1-2회 정도예요."
이 교수는 최근 성남아트센터가 제작한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의 무대디자인을 했다. 오페라의 경우는 특히 국내 무대미술가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제작자들이 홍보.마케팅하기가 좋아서 그런지 이탈리아 등 외국의 디자이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요즘 공연장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음향이나 조명 쪽이 특히 그렇고 충분한 광량을 가진 영상기자재의 활용도도 아주 높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예를 들어 세계적인 명성의 예술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같은 데는 몇 백억씩 투자해 무대장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다. 미국에서는 시골에 있는 학교에서도 하이테크 무대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공연 때 관객들이 배우보다 먼저 보게 되는 게 무대예요. 기본 인프라죠. 그런데 그 무대가 시각적인 면에서 관객의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되면 공연에 몰입하는 것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무대가 초라하고, 엉성하고, 엉뚱하면 배우들도 힘들어해요. 시각적인 부분, 감성적인 부분, 기능적인 부분이 다 맞아야 연기도 잘 하게 돼 있어요."
이 교수는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뉴욕시립대학교 브룩클린컬리지대학원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한 이래 '오이디푸스 렉스'(1990년) 를 통해 무대디자이너로 데뷔했으며 2005년 '고양이늪'(연출 한태숙.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으로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탔다. 데뷔 이래 '자전거'(김철리 연출), '덕혜옹주'(한태숙 연출), '공길전'(이윤택 연출), '이름'(윤광진 연출), '뇌우'(이윤택 연출) 등을 포함 170편에 가까운 연극, 오페라, 뮤지컬, 무용 작품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그는 무대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조명이나 음향의 역할이 커져 무대 위에서 배우의 역할을 위축시킬 가능성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 건 기우라고 얘기한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 왔던 유명한 캐나다 연출가 있죠? 로베르 르파주. 극에서 미디어를 많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람이에요. 그런데 거기(안데르센 프로젝트)에 나온 배우의 연기는 너무 세련되고 좋거든요. (배우들의 역할은)연출가가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어요. 우리는 그런 걸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죠. 소극장에서 배우 위주로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좀 다양한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angfam@yna.co.kr
(끝)

1
2
3
4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