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회복 국면에 접어든 국내 경제가 고유가, 환율하락 외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라는 대외발 악재에 노출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세계 물가 안정에 기여온 해 중국 경제가 고성장.고물가 시대에 진입한 데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최근 4∼5년 간 장기 상승 국면을 지속해 온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 식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 경제도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년 5개월 만에 3%대에 진입하고 생산자물가가 9개월째 오름세를 나타내는 등 물가 상승 압력이 고조되면서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단담회에서 "(앞으로) 물가를 계속 주시할 생각"이라고 밝혀 향후 우리 경제의 최대 복병은 물가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 美 스태그플레이션 불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 국제유가 급등 등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세계 경제에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 상하 양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경색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유가의 급격한 상승은 물가상승에 대한 새로운 압력을 증가시키고 경제활동을 더욱더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미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불황 속에서 물가가 오르는 상태를 말하는데 1970년 미국에서 석유 파동 등으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직면하게 된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신용경색과 이로 인한 주택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주택시장의 위축은 가계 소비지출의 축소, 기업투자의 감소를 불러오고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반면 최근 국제유가를 비롯한 상품가격의 급등과 달러 약세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이 의회에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도 3.4분기보다 4.4분기 경제성장이 현저하게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전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3.4분기 3.9%에서 4.4분기에는 1.5%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이 미국의 금융시장을 엄습하면서 지난 한 주 뉴욕증시는 다우지수가 4.1% 급락해 13,000선이 위협받고 있고, 나스닥은 6.5%나 폭락해 2004년이후 3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 中 경제도 고물가 시대
세계 경제의 또다른 축인 중국 경제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대되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중국은 수 차례에 걸친 긴축 조치에도 불구하고 2.4분기 경제성장률이 11.9%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압력도 높아져 중국 인민은행이 8일 발표한 '통화정책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5%에 이르러 당초 목표치인 3%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물가 뿐만 아니라 소매물가와 임금 상승폭도 확대돼 인플레이션이 중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곧 세계 경제의 성장세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0여년 간 지속돼온 중국 경제의 '고성장.저물가' 현상이 '고성장.고물가'로 전환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이는 다시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제를 둔화시켜 아시아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소비자 물가와 임금의 상승은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더불어 중국 수출 물가의 상승요인으로 작용, 대 중국 수입국의존도가 높은 일본, 한국, 미국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확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물가상승 경기회복 발목잡나
우리 경제도 이미 저물가 시대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안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10월 생산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9월에 비해 0.3% 올라 9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갔고, 10월 소비자물가도 지난해 10월보다 3.0% 오르면서 2005년 5월의 3.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5년 2.8%, 2006년 2.2%에 이어 올해도 2%대가 예상되지만 최근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내년에는 2004년(3.6%) 이후 4년만에 3%대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성태 한은 총재는 "앞으로 물가상승률은 3%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물가를 계속 주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물가 상승 압력이 되살아나고 있는 우리 경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물가상승이 소비심리 위축→생산감소→투자감소로 이어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중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 증대 등으로 세계 경제가 동반 둔화되면 우리 경제 역시 최근의 회복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세계 경제가 미국의 경제에 여전히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성장률이 급락할 경우 이는 세계 경제의 둔화를 유발해 우리나라의 수출 및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면 내년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1%에도 못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는 곧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송 연구위원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축이 다극화되고 미국 경제와의 동조 현상이 많이 완화됐지만 미국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더 나빠지고 개도국 등의 경기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던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아울러 고유가로 인한 충격이 지속될 경우에는 내수의 회복세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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