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개방으로 경제 살릴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자인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는 1일 "우리나라 서비스업 생산성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시장 개방으로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날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제1회 관훈포럼에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백화점에 가면 상냥하게 웃으며 주차권 발매기에서 주차권을 뽑아주는 여종업원을 볼 수 있다"면서 "주차권 발매기는 종업원을 없애기 위해 만든 건데, 종업원과 기계가 같이 있는 것은 분명한 인력과잉"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같이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에는 과잉인력이 너무 많다"면서 "과잉고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산업에 엄청난 과잉고용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고객의 불편이나, 고객이 서비스를 얻기 위해 낭비해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사회적 차원에서 본 서비스업의 생산성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 "단순통계만 보고 미국이 우리나라 서비스 생산성의 몇 배라고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이나 미국 서비스 회사 사장 눈으로 보면 우리나라 서비스업 종사자의 절반은 짜를 수 있을 정도로 과잉고용이 존재한다"며 "아울러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치킨집이나 호프집 종업원, 2∼3명이 일하는 구두방 종업원 등도 역시 선진국 기준으로는 과잉고용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서비스시장을 급격히 개방할 경우 엄청난 실업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서비스의 질보다 인건비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는 외국계 서비스업체가 들어오면 우리나라 업체도 하향표준화를 해야 할테고, 치킨. 호프집들도 도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교수는 "한 발 더 나가 금융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특화하고 제조업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더 문제"라며 "자본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고급금융인력이 살기좋은 환경을 조성해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림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금융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장기간 영국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로 서구와의 역사적 유대가 있고 몇 백년 동안 서구인들이 살아온 커뮤니티가 있어 금융허브가 된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역사를 바꾸지 않고서는 금융허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네덜란드와 영국, 미국 등의 사례를 봤을 때 금융중심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차지한 만큼, 앞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는 제조업이 가장 발달할 것으로 보이는 상하이나 일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의 금융규제를 모두 풀어버리면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원화 평가절상 압력이 생겨 제조업 수출에 치명타를 줘 제조업이 망한다"며 "금융산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제조업을 죽여 금융을 발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최근 우리 경제를 잘 요약해주는 세가지 현상으로 주차권 발매기와 종업원의 공존 외에 의사라는 직업이 엄청나게 인기가 높다는 점, 영어교육 열풍 등을 들었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이 인기가 높은 이유로 IMF 구제금융 이후 이공계 출신 연구개발직을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 등 고용불안이 심각해졌다는 점을 지목하면서 우리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수한 인력이 연구개발직으로 들어가 기술개발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현상은 국가적 차원의 인적자원 배분 왜곡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 "우리나라는 영어와 어족이 달라서 영어를 배우려면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를 못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영어를 전문적으로 하고, 다른 전공을 할 사람은 자기 전공에 매진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난 10년간 진보 정권의 집권에 대해 "복지지출이 7%대로 올라갔다면서 좌파정책을 썼다고 하는데, 경제개발협력기국(OECD)평균이 24%이고, 우리나라보다 소비수준도 낮고 인구고령화가 훨씬 덜 진전된 나라들도 12%를 쓰는 데 비하면 현 정권이 좌파정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향후 세계경제와 관련, "앞으로 몇 년간 세계경제는 안 좋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개발도상국의 주식시장이 많이 뜨고 있는데, 이는 미국경제 부진으로 자금이 몰린 데 따른 것에 불과하며 미국경제가 침체에 들어가고, 중국경제도 높은 물가 등으로 타격을 입으면 향후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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