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국내 기업들이 '초긴장' 상태에 접어들었다.
원.달러 환율하락, 원자재 가격 폭등, 미국 증시 급락 등 대외적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치솟는 유가는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유가 상승은 당장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생산.수익성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유발하며,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 경기침체로 연결돼 기업 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 해운, 석유화학 등 석유 의존도가 높은 업종의 일부 기업이 '비상경영'을 선언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동시에 내년도 사업계획 마련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 "돌파구를 찾아라"
국내 업체들은 유가 상승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갖가지 묘책을 찾는데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연초 배럴당 60-70달러의 유가를 예상했던 항공업계는 '90달러 돌파'라는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비상경영에 나선 상태다.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2단계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에너지 절약 등을 통한 추가 비용 절감에 나섰다. 최적 항로 찾기, 불필요한 물건 싣지 않기, 본사 건물 절전시간 늘이기 등이 그 방법이다.
율도비축기지에 한국발 항공편의 1개월치 소요분인 85만 배럴,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 비축유 40만 배럴을 확보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유가 급등이 계속될 경우 이 비축유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지속적인 고유가에 따른 세계 물동량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해운업계는 우선 선박 가동.운영에 필요한 유류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그 방안 가운데 하나로 역경매 시스템을 운영중이다. 이는 항로에 위치한 모든 항만에 기름값을 타진한 뒤 가장 싼 기름값을 제시하는 항만에 들러 주유하는 것을 일컫는다.
석유를 원재료로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효성과 코오롱 역시 '원가 절감'을 주요 과제로 설정해 놓았다. 효성은 제조공정 합리화를 통한 원가 절감에 나서는 동시에 기름 대신 전기나 폐열을 활용해 만든 스팀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저렴한 심야전력을 축적, 낮에 사용하는 수축열 시스템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효성과 코오롱은 전체 제품군 가운데 기능성 섬유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유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상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지난 여름 에너지 비용 절약을 위해 '쿨비즈(Cool-biz) 캠페인'을 벌인 롯데백화점은 사무실 실내 온도를 예년보다 3도 가량 낮은 섭씨 20도로 조정하는 '웜비즈(Warm-biz) 캠페인'을 실시한다.
또한 본사 건물내 엘리베이터를 홀수층.짝수층 전용으로 나눠 가동하고 화장실용 램프를 기존 26W에서 13W짜리 절전형으로 교체했으며, 전 점포매장의 조도를 시간대별로 조절토록 했다.
◇ "긴축경영도 불가피"
기업들은 최근의 고유가가 '단기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그리고 있다.
벙커C유를 사용하는 해운업계는 올해 1t당 330달러를 예상했지만 최근 고유가 행진으로 400달러까지 올라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만일을 대비한 긴축경영 채비에 한창이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호조를 보이겠지만, 내년에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설 경우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이들 선사는 고유가가 전세계 경기침체, 나아가 물동량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노선 합리화'에 초점을 맞춰 내년도 사업계획을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엄청난 양의 항공유를 소비해야 하는 항공업계도 내년 고유가에 따른 영업이익 감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선에 이르자 '에너지 절감'을 핵심으로 한 비상경영을 선포한 데 이어 '유가 상승 기조'를 전제로 내년도 사업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둔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 LCD, 휴대전화 등 석유 의존도가 낮은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유가에 따른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편이지만, 원가구조에서 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수시로 파악해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업계는 유가 상승이 생산.공급 측면은 물론 소비자의 차량 구입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는 만큼 다른 산업보다 복합적인 대응책 마련에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차는 무엇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차량 개발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차량 경량화, 고효율 엔진 개발 등을 통해 연비를 꾸준히 개선하고 에탄올, 연료전지차 등 대체 차량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유가 국면에서 자동차 소비를 견인하기 위한 방안인 동시에 '친환경, 고효율, 경제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세계 자동차시장 경쟁에서 현대차가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인 셈이다.
◇ "기업의 힘만으론 벅차다"
환율과 마찬가지로 유가 역시 기업들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경제 변수다.
기업 자체적으로 유가를 움직일 수 없을 뿐더러 자체적으로 석유 소비 등을 최대한 억제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유가에 따른 시장 축소 등은 기업들의 대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업계 내부의 유류세 인하 요구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휘발류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자동차 운행은 줄어들 것이며 이는 자동차 소비 축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도 지난 7월 "우리나라의 유류세는 57.7%로 일본의 49.9%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51.9%에 비해 높다"면서 "적어도 OECD 회원국 평균에는 근접할 수 있도록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고유가 현상이 대선 기간에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정부 및 정치권을 향한 산업계의 발언권이 커질 수 있다. 고유가로 기업들의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이므로 유류세 인하, 법인세 인하 등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각종 건의를 관철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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