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은 도화서 화공이었다>

  • 등록 2007.10.26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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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교수 사대부설 반박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실경산수화의 대가로 통하는 겸재 정선(1676-1759)은 사대부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도화서 화공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선표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가 27일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서 겸재가 도화서 화공으로 근무한 사실을 논증하는 글을 발표한다.
주최측이 미리 공개한 발표문 '정선의 방고참금(倣古參今)-조선후기 방고산수화와 실경산수화의 상보성'에서 홍 교수는 겸재가 도화서 화공으로 근무했음을 추측하게 하는 기록들을 제시한다.
현상벽(1673-1731)의 '관봉유고'에는 정선이 관상감에 입사하기 1년 전인 1715년 정선의 직함을 교수로 소개하는 대목이 있어 겸재가 관상감 출사 전에도 관직에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홍 교수는 "이하곤(1677-1724)이 하양현감으로 떠나는 정선에게 준 전별시에서 '다만 어머니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십년을 시덥지 않은 벼슬살이로 서울의 먼지 속에서 분주했구나'라고 읊은 것으로 보아 이런 추측은 더욱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1724년 회양부사 조유수(1663-1741)가 정선의 벗 이병연에게 겸재의 그림을 청하는 서신을 보내자 이병연은 "비로소 알고 고심한 것은 (정선이) 화공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非獨畵工也)"라고 답했다.
'화공이 아니다(非畵工)'가 아니라 '화공 만이 아니다(非獨畵工)'라고 답한 것은 한 때 화공이었으나 지금은 외직 수령으로 있는 관료이기에 마음이 쓰인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는 것.
홍 교수는 "정선이 문인화가지만 거의 직업화가처럼 수 없이 작화한 것은 화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했던 남다른 경력 때문일 것"이라며 "정선은 김창흡 문하에서 수학한 '노론 사대부 화가'가 아니라 전문적인 화력(畵歷)에 기반해 당색과 신분을 초월해 교류를 펼친 인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정선은 종래에는 어엿한 사대부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출생했을 당시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4대에 걸쳐 문반 6품, 무반 4품 이상의 벼슬을 하지 못해 끼니를 자주 거를 정도로 빈곤한 상태였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틀을 놓은 김조순(1765-1832)은 훗날 '충헌공 김창집(김조순의 고조부)이 겸재의 처지를 알고 "도화서에 들어가는 것을 힘써 도왔다"(勸其入圖畵署)고 했는데 김조순의 언급은 미술사학자들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명문 사대부가문 출신인 정선이 도화서에 들어가는 것은 터무니 없는 망발이며 1716년3월 관상감의 겸교수로 입사한 것이 도화서 임용으로 와전됐다는 주장이 현재 미술사학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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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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