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는 멜로드라마에서 출발하지만 장르 영화의 클리셰와는 약간 거리를 두며 이어가다가 도식적이지 않은 결말을 내곤 한다. 하지만 그가 멜로 장르를 뒤집는 장르 뒤집기에 관심 있는 건 아니다. 그가 최종적으로 접근하는 건 사랑이다. 이송희일 감독은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멜로를 택하고 사랑을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멜로 장르 안의 클리셰를 깨면서 내러티브를 새롭게 한다. [후회하지 않아]도 그렇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 장르에 게이 로맨스라는 이질적인 설정이 들어가며 상투적인 소재가 새롭게 힘을 얻는다. 그래서 상투적인 멜로와 차이를 두며 이어가던 영화는 색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영화가 70년대 호스티스물의 게이 버전인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줄거리를 길게 설명은 말아야겠다. 영화는 속옷만 입은 두 청년이 아름다운 육체를 자랑하며 숲 속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치 퀴어의 천국 같은 이 곳은 수민(이영훈)이 서울로 상경해 일하게 되는 검고 어두운 공장과 대비된다. 공장에서 일하는 순간 노동자 계급으로 전락한 수민은 공장에서 나오면서 계급이 더 하락해 도시의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호스티스로 일하기 위해 들어가는 술집 앞에서 수민은 문득 높은 건물을 바라본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늘 마주치는 서울의 풍경이지만 이송희일 감독이 보여주는 시선으로 본 서울은 낯설다. 고층빌딩은 끝없는 욕망으로 발기한 남근처험 한없이 높고 거대하다.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도망칠 곳이 없는 수민은 이 거대한 남근 밑에서 몸을 팔며 살아간다. 그리고 재민(이한)이 나타난다. 그는 수민이 다니던 공장 이사장의 아들이자 부르조아이다. 재민은 우연히 마주친 수민을 운명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고 그에게 집요하게 구애한다.
영화가 수민과 재민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과 상황은 그들의 사랑을 변하거나 움직이게 작용하는 요소로서 존재한다. 수민과 공장에서 같이 일한 재철(황춘하)은 평범한 노동계급의 노동자를 상징한다. 그는 공장을 뛰쳐나온 수민과 달리 꾹 참고 공장에서 버티지만 결국 일하다 다쳐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그와 같은 고아원 출신이자 그의 뒤를 돌봐주는 환선(이승원)도 있다. 그는 계급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삶은 순탄하지 않다. 그리고 수민을 쫓아다니는 재민이 있다. 멜로 장르에서 운명적인 만남은 주인공이 사랑에 목숨을 걸게 하는 계기가 되는데, 재민 역시 대리기사를 불렀다가 마주치고 공장에서 다시 마주친 수민에게 도피하듯이 매달린다. 도피하듯 달려드는 재민이 수민은 반가울 리 없다. 그는 묻는다, ‘나는 매일 밤 수많은 XX를 빠는데 당신 XX가 특별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재민은 대답한다, ‘내건 하나니까, 네 것도 하나니까’ 이 대사에서 영화는 퀴어 시네마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게이’가 뭘까, 남자의 육체를 욕망하는 것이 게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퀴어라는 섹슈얼리티는 육체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퀴어시네마에서 육체와 섹스는 중요하다. 이전에 칼럼에서 다룬 영화 [동백꽃 프로젝트]도 세편의 단편 모두 섹스신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어째서 섹스=클라이막스인지 그 발상이 궁금했는데, [후회하지 않아]에는 해답이 있다. 퀴어란 육체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육체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서 섹스가 퀴어를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고 영화는 말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의 몸에 특히 성기에 집착한다. 수민의 몸을 사는 남자들은 수민의 성기를 움켜쥔다. 재민은 수민과의 섹스 도중 말한다, 네 물건이 방아쇠였으면 좋겠어. 수민에게 다시 찾아오는 재민은 물총을 들고 있다. 퀴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아름다울까, 영화는 성기를 상징하는 미장센으로 가득하다. 독특한 색감으로 덧칠된 화면 속의 고층빌딩은 마치 거대한 남근 같다. 그래서 서울은 발기된 남근이 가득한 정글로 보인다. 정글의 밑바닥에서 몸을 착취당하는 수민이 있고 꼭대기에서 이를 착취하는 재민이 있다. 재민은 화가 나면 손(주먹)을 자해하는데 이는 발기된 성기를 어쩌지 못해 자학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수민이 가는 곳마다 배경에는 높은 빌딩이 가득하다. 수민은 ‘서울을 싹 불 질러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와 같이 호빠에서 일하는 정태(조성원)는 ‘나는 네가 돈만 주면 네 것도 빨 수 있어’라고 말한다. 재민은 수민의 옥탑방에서 안테나를 고치며 키스한다. 그들의 뒤에는 도시의 밤풍경이 펼쳐져있다.
수민은 재민을 받아들이지만 둘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재민에게도 그의 사랑이 변하도록 작용하는 주변인물이 있다. 게이인 그의 성정체성을 알면서도 결혼을 강요하는 어머니(김화영)가 있고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되는 그의 약혼녀 현우(김정화)가 있다. 재민은 두 사람 때문에 갈등하다 잠시 수민을 버린다. 그리고 수민 역시 변한다. 수민을 변하게 만드는 새로운 인물은 가람(김동욱)이다. 가람은 게이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도시에 적응해 살아가려고 하지만 결국 정글에서 죽어 소모품처럼 사라진다. 수민은 그의 유골을 도시 한복판에 흩뿌린다. 정태 역시 적극적으로 도시의 착취 구조에 적응한 인물이다. 그는 게이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게이 섹스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언젠가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애인에게 배신당하면서 분노가 폭발하고, 정태의 분노와 가람의 죽음과 재민의 배신으로 터진 수민의 분노가 만나는 순간 영화는 다른 곳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영화는 의외의 결말로 향한다. 수민과 정태가 재민을 납치한 차 안에서 라디오 디제이는 말한다, ‘1부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어요 분위기 바꿔서 2부로 가볼까요’ 영화는 정말 분위기를 바꿔 잔혹극으로 돌변한다. 재민을 파묻는 구덩이 앞에서 욕지거리와 주먹다짐 끝에 정태는 떠나고 수민과 재민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구덩이에 남는다. 그리고 눈이 내린다. 자연에서 시작해 도시의 밑바닥을 헤매던 영화는 자연으로 돌아와 싸늘하지만 아름다운 눈을 흩뿌리며 클라이막스를 끝낸다. 영화가 맞이하는 결말은 어둡고 퇴폐적이었던 영화 전체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경쾌한데, 그게 이송희일 감독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한 두 남자의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영화의 결말이 완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결말은 장르의 끝이긴 하지만 감정의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는 항상 감정을 충실하게 끌고 갔고 감정이 끝나는 순간 영화가 끝났지 이야기가 끝난다고 영화를 끝내는 감독은 아니었다. 빠듯한 예산과 일정 때문에 서둘러 마무리 된 게 아닐까도 싶지만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시 마음을 열고 재민은 수민의 성기를 움켜쥔다. 이 광경을 목격한 경찰은 어이가 없어서 혹은 낯 뜨거워서 고개를 돌린다. 스트레이트의 눈으로 본 퀴어는 아름답지 않겠지, 그렇다면 퀴어의 눈으로 본 퀴어는 아름다울까. 퀴어가 말하는 퀴어의 사랑이란 어떤 걸까. ‘후회하지 않아’라는 제목은 이런 결말 이후 관객에게 주어지는 감정의 숙제이다. 이렇게 피터지게 사랑하고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 사랑에 당신은 동조하는가. 이 사랑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감독은 그렇게 사랑 이야기로 돌아와 영화를 끝낸다.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후회하지 않아]에는 독립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영훈이 [굿 로맨스]에 나왔다는 건 다들 알 것이다. 그와 함께 [굿 로맨스]에 출연했던 박미현도 영화에 나온다, 설거지는 눈으로 하는 거라고 다그치던 레스토랑 매니저가 그녀다. 그녀는 이송희일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가 있는 [동백꽃 프로젝트]에도 등장했는데, 재철 역의 황춘하나 마담 역의 정승길 역시 [동백꽃 프로젝트]에 나왔다. 환선역의 이승원, 가람역의 김동욱, 공장장역의 양익준도 독립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다. 재민역의 이한의 경우 탤런트 경력이 더 부각되는 것 같던데 사실 [내 청춘에게 고함]에도 나왔었다. 이송희일 감독은 영화적 선택 때문인지 예산 제약 때문인지 (혹은 둘 다인지) 자신의 이전 영화에 나온 배우나 주변의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 만약 영화적 선택도 고려된 결과라면 앞으로 나올 그의 새 영화에 김정화가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재밌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영화는 3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모두 깨며 새로운 전례를 만들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영화는 승승장구 하고 있다. 앞으로 개봉할 독립영화 중 몇은 이 영화 덕을 볼 것이고 앞으로 만들어질 상업 게이 영화 역시 덕을 볼 것이다. 이를 두고 이래저래 말이 많은데, 나는 이 영화가 흔히 야오이니 동X녀니 BL이니 라고 칭해지는 동성애 문화상품 아니냐는 걱정에 대해서, 그런 영화 밖에서 행해지는 토론은 의미가 없으며 영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안에서 이 영화를 야오이 소모품이 아닌 정당한 퀴어 시네마로 옹호해야 하는 이유를 나보고 찾으라면, ‘매일 밤 수많은 XX를 빠는데 당신 XX가 특별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라는 뼛속까지 게이스러운 대사를 지적하고 싶다. 이 영화는 더할 나위 없이 게이스러우며 그건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걸 어떻게 소비하느냐를 두고 우려할 순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상품도 아니다. 동X녀 시장과 폐인 마케팅을 이용했다는 비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도 역작용만 있는 건 아니며 (적당한 선을 지킨다면) 순작용도 분명 있다. 만약 앞으로 나오는 게이 영화가 기획에서부터 마케팅과 소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으로만 이용되고 상품 이외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면 그때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최근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게이 무비들은 이런 경우가 간혹 있고 (예를 들면 [Eating Out] 같은) 우리나라에서 야오이판 [제니 주노]가 등장한다면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김이환_영화칼럼니스트
제목 : 후회하지 않아 No Regret
감독 : 이송희일
주연 : 이영훈, 이한, 조성원, 김동욱, 정승길, 이승원, 황춘하, 김정화, 김화영, 이승철
정보 : 2006 / 극영화 / DV / 114분
출처:네오이마주 http://www.neoimag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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