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타임테이블 제시 여부가 관건
(양곤=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미얀마에 민주화의 봄은 오지 않을 것인가.
승려들의 선홍색 가사로 양곤 시내를 붉게 물들였던 민주화 시위는 이번 주 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시내 곳곳에 배치된 군경의 감시를 피해 숨바꼭질하듯 전개되던 게릴라 시위도 지난 주말이 마지막이었다.
4일 오전 양곤 중심가는 군사정권의 말 그대로 평온을 되찾았다. 시민들은 버스정류장 등에 지켜선 무장군인들과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시선을 길바닥에 깊숙이 깔고 서둘러 갈 길을 재촉했다. 과연 10만명의 군중이 한데모여 민주화를 목청껏 외쳤던 시위가 이곳에서 벌어지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다.
◇ 국제사회를 향한 유화 제스처 = 미얀마 군정은 경제제재 등을 통해 유혈진압의 책임을 물으려는 국제사회를 향해 잇따라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특사에게 입국비자를 내준 것이나 체류기간을 하루에서 사흘로 연장해준 것만도 군정의 이례적 조치라고 양곤 외교가에서는 평하고 있다.
나아가 감바리 특사가 행정수도 네이피도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최고실권자 탄 슈웨 장관과 그 대척점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차례로 접견한다는 것은 폐쇄국가 미얀마에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미얀마 군정이 이처럼 감바리 특사를 '특별 대우'한 것은 중국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내년에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중국은 미얀마 군정의 후견국으로 간주되다 보니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나몰라라 하면서 팔짱만 끼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제재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앞다퉈 발표한 것도 나름의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 민주화 타임테이블 마련이 관건 = 미얀마 군정은 국제사회의 압박도 부담이지만 이번 시위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난 민심을 어떻게 추스르느냐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군정은 지난달 초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불참한 가운데 여러 정치세력 대표들과 함께 새 헌법을 만들기 위한 기본 원칙들에 합의했다. 이른바 7단계 민주화 로드맵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주화 로드맵은 1988년에 정지된 헌법을 다시 제정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의회를 구성한 뒤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로드맵에는 시간표가 달려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시민들은 과연 군정이 수십년간 누려온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로드맵을 이행하겠느냐는 불신을 갖고 있다.
군정이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기 위한 명시적 타임테이블을 제시하고 수치 여사의 민주주의민족동맹 등 민주세력과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외교가는 전망하고 있다.
◇ 개혁개방 통한 경제활성화 시급 = 미얀마 군정은 지난 8월 중순 가솔린과 디젤, 차량용 천연가스 가격을 무려 2-5배 전격 인상했다. 갑작스런 유가폭등으로 버스요금은 곧바로 2배로 뛰었고 주요 생필품 가격도 급등하면서 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됐다.
고질적인 외환부족을 겪고 있는 미얀마 군정이 세수확대 차원에서 단행한 유가 인상 조치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해 서민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이번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도 오랜 군정에 억눌려온 민심이 유가인상을 계기로 폭발하게 된 것이다.
군정은 중장기적 경제정책을 마련,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그때그때에 따른 임시방편적 정책을 남발해왔다는 것이 미얀마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지적이다.
차량수입을 갑자기 금지하고 양곤 시내에 오토바이 통행을 통제한 것에서부터 미얀마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전격 이전한 것까지 군정이 졸속 단행한 조치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전문가들은 군정이 단계적 개혁개방과 외국인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민주화 시위의 후유증을 궁극적으로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fre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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