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그 동안 너무 힘이 들었다. 끔찍한 기억들도 많았고... 그래도 이번에 결정이 잘 내려질 거라는 귀띔을 들어서 추석 전에 아버님 묘소에 가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의해 故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간첩의 누명이 벗겨진 27일 장녀 조호정(80)씨는 `기쁘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울음섞인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날 진실화해위가 조봉암 선생의 사형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구제 및 명예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권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한 것.
조씨는 "올해 나이가 80세인데 내 생전에 이렇게 잘 될까 싶었다. 결국 해내고 말았다"라며 감격해 했다.
진실화해위의 이번 결정은 1959년 조봉암 선생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지 48년만에 처음으로 국가 기관이 당시 수사와 판결이 위법했다는 점을 인정해 고인의 명예와 피해를 회복할 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진보 정치인으로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조봉암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것은 이승만 정권에 위협이 될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진실화해위는 분석했다.
해방 후 공산당을 탈당해 1대와 2대 국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 등을 지낸 조봉암 선생은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각각 80여만표, 200여만표 등을 얻으며 선전한 데 이어 1956년 11월에는 진보당을 창당했다.
조봉암 선생은 그러나 민의원 총선을 앞둔 1958년 1월 국가변란 혐의로 진보당 간부들과 함께 전격 체포되는 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했다.
때맞춰 육군 특무대는 같은해 2월 HID 공작요원인 양이섭을 한 달 동안 감금 조사한 결과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조봉암에게 전달했다'는 자백을 확보하고 조봉암 선생에 대해 간첩 혐의까지 추가했다.
이에 검찰은 조봉암 선생을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로 기소했고 서울지법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당시 정권은 이 후 국무회의를 열어 조봉암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고 법원은 2심과 3심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하면서 조봉암 선생은 1959년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조사결과 당시 수사과정과 기소과정, 그리고 법원 판결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하고 국가에 화해 등의 조치 이행을 권고해 뒤늦게나마 유족들의 한을 풀어줬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권고사항 처리단'을 설치해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과 권고사항을 적극 수용키로 한 만큼 조봉암 선생에 대한 권고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조만간 구체적인 조치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조봉암 선생의 유족들은 진실화해위 결정을 근거로 당시 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수 있어 만약 재심에서 무죄로 뒤집힐 경우에는 최근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배상판결처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통해 국가 배상금도 받아낼 수 있다.
조호정씨는 "아직 진실화해위 결정문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당연히 재심을 청구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재심 청구 의사를 밝혔다.
firstcir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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