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워싱턴.도쿄=연합뉴스) 이명조.김재홍.최이락 특파원 = 한국 정부가 30일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이 귀국하는대로 사태 해결에 소요된 제반비용에 대해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외국의 유사한 사례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상권 문제가 다뤄졌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의 경우 2004년 4월 이라크에서 무장단체에 억류됐다 풀려난 다카도 나호코(高遠菜穗子)씨 등 자국민 3명에 대해 귀국경비 등의 명목으로 237만엔을 청구한 일이 있다. 구상권을 행사한 것이다. 명목은 항공료와 숙박비, 진료비 등. 비용을 모두 지불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일부 금액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일본에서는 피랍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느냐를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피랍자들이 자위대가 파견된 이라크에서 목숨을 걸고 인도주의적 봉사활동을 전개했었기 때문이다.
자위대의 이라크 전쟁 지원 활동으로 인해 무장단체에 납치돼 생사의 갈림길에 고통스러워했을 자국민에게 "납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고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 비판론의 핵심이었다.
일부 외국 언론은 피랍자들의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자랑스러워하지는 못할 망정 구출비용을 청구한 것은 계산에 철저한 일본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피랍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위험지역에서 무리하게 활동했다가 납치돼 전 국민을 불안과 우려에 몰아넣는 등 피해를 준 만큼 본인들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외무성측도 '자기 책임론'을 제기하며 "민간인으로 해외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켜 귀국할 경우에는 모든 경비를 자기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아프간 한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곧바로 아프간 여행 자제령을 내리는 등 자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발빠르게 대응했다.
일본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의 본인의 안전은 철저하게 본인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의 여행 자제령 등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불미스런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렸을 경우에는 책임 소재를 철저히 따져서 당사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구상권을 행사한데 반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몸값을 비롯한 관련 비용문제를 철저히 수면 위로 올리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
미국 정부는 테러단체인 탈레반 등과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이제까지 공개적인 협상에 나서거나 타협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대신 민간 차원에서 몸값을 지급하거나 인질석방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막후 역할은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의 프리랜서 여기자인 질 캐럴이 지난 2006년 1월7일 현지 통역과 함께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뒤 석방과정을 보면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원칙과 역할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고 신문사측이 몸값 지불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묵시적으로 동의한 형태를 보였고 그의 석방을 위해 당시 수용소에 억류중인 이라크 여성 포로 5명을 석방하고 사면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구상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은 정부와 정치권 등에서 부각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미국은 '여행주의-여행자제-여행제한-여행금지' 등 여행지역에 따른 통제수위를 결정하는 한국정부와 달리, 거주.이전의 자유라는 기본권 침해 문제로 인해 정부가 나서 위험지역 여행을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미 국무부를 통해 필요할 때마다 여행 경고를 발령하고 부득이 여행을 하는 경우엔 본인 스스로 신변 안전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현재 미 국무부가 지정한 여행경고 지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 등 27곳이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4, 5월 아프간에서 탈레반에 인질로 억류된 구호요원 2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부족 원로 등의 중재를 요청한 적이 있고 프랑스군의 철군 요구에는 철군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유연하게 대처했다.
당시 프랑스 언론들은 인질 석방 사실을 전하면서 500만달러의 몸값을 정부가 준비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2005년 1월 이라크에서 취재도중 납치됐던 리베라시옹의 여기자 플로랑스 오베나가 1000만달러의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됐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인질 석방과 관련해 몸 값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철저히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 입장을 견지했다. 이 때문에 구상권 문제도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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