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연합뉴스) 옥 철 기자 = 26일 오전 일본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
2007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틀째 첫 종목인 남자 20㎞ 경보에서 1위로 골인한 에콰도르의 베테랑 '워커' 헤페르손 페레스(33)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그대로 트랙에 쓰러졌다.
우승자는 곧바로 들것에 실려나갔다.
이날 경보 레이스가 시작된 오전 8시 오사카 시내 수은주는 31℃를 가리켰다. 1시간20여분 뒤 골인 시점엔 34℃까지 올랐다.
낮 최고 기온은 36℃에 달했다. 습도까지 60-70%로 높아 온몸을 휘감는 열풍이 선수들의 허파를 녹일 듯했다.
페레스는 정신을 차린 뒤 기자회견에서 "오늘 경보 레이스를 완주한 모든 선수들에게 존경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유럽 랭킹 1, 2위를 다투는 발레리 보르킨(21.러시아)은 더 심했다.
보르킨은 15㎞ 지점을 통과한 뒤 후반부 레이스를 펼치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변에 의식을 잃고 고꾸라 졌다.
응급차가 보르킨을 긴급 후송했지만 완전히 탈진해버린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이어가던 레이스가 자칫 큰 화를 부를 뻔했다.
경보 15위를 한 박칠성(25.삼성전자)은 "2㎞ 순환 코스를 딱 두 바퀴 돌고 나니까 '이거 계속 갈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일본 선수가 출발하기 전에 벌써 33℃까지 올랐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20위로 골인한 김현섭(22.삼성전자)도 "6㎞부터 계속 고비가 찾아왔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뛰어본 대회 중 단연 최악의 레이스로 꼽을 만 하다"고 했다.
이날 경보는 최장거리인 50㎞가 아니라 20㎞로 정상급 선수들은 실격으로 탈락하는 경우는 있지만 웬만해선 기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3명이 중도 포기했다.
전날 마라톤 레이스에서도 57명만 완주하고 3분의 1이나 되는 28명이 타월을 던졌다.
그래도 마라톤은 나은 편이었다. 출발 시간 기온이 28℃였고 한낮에도 34.7℃가 최고였다. 기온은 26일 절정에 달했다.
간사이 지방을 강타하고 있는 열파는 선수 뿐만 아니라 팬들도 가만 놔두질 않았다.
5만석에 달하는 나가이 경기장은 이날 오전 세션에선 지붕이 없는 본부석 반대쪽 관중석이 거의 비었다.
그나마 그늘 쪽에 자리잡은 관중도 연방 부채질을 부쳐댄다. 아예 윗통을 벗고 앉은 팬들도 꽤 있다.
현장 중계진은 카메라에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를 차단할 '발'을 걸었다. 그대로 햇볕에 노출됐다가는 기기 오작동이나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8월 말인데도 기온이 연일 올라가자 대회조직위원회도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눈치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내부에서도 아열대 폭염 양상이 장기화되는 날씨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열파가 이어진다면 31일 여자 20㎞ 경보, 9월1일과 2일 남자 50㎞ 경보, 여자 마라톤에 출전할 선수들이 죄다 '지옥의 레이스'를 펼쳐야 할 판이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대구시도 4년 뒤 비슷한 시기에 대회를 열게 된다.
현재 대구.경북 지역도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매년 폭염이 찾아오는 시기가 조금씩 뒤로 밀리는 추이를 보이고 있어 대구 대회 조직위원회도 날씨 대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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