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과거 9룡 중 6룡이 경선에 불복해 탈당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 중 탈당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박관용 전 국회의장)
제17대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결과가 20일 오후 나온다. 이명박(李明博) 전 시장과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은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켜야 하지만 과연 순순히 승복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 정치사에서 경선은 불복의 과정으로 점철됐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1997년 경선은 9명의 주자가 깃발을 든 이른바 `구룡쟁패'라 불리는 치열한 선거였다.
박 전 의장이 언급한 대로 후보 대부분이 불복하고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가 끝까지 남아 경합을 벌였으나 이인제 후보의 패배에 이은 탈당과 독자 출마로 경선은 색이 바랬다.
이인제 후보는 본선에서 490여만표를 얻었지만 당시 김대중 당선자와 37만표로 뒤진 이회창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인제 후보의 경선불복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후보는 2002년 민주당의 전국 순회 경선 때도 노무현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경선을 중도에 포기, 자민련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이인제 후보에게는 `경선불복'의 대표적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버렸다.
또 2002년에는 비록 경선 불복은 아니었지만 이인제 후보 뿐만 아니라 정몽준 후보도 명예롭지 못한 역사를 남겼다.
당시 `국민통합 21' 소속 정 후보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를 하기로 했다. 역사적인 포장마차 회동을 통해 후보단일화에 합의, 노 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되자 지지를 약속했으나 정 후보는 대선 전날 이러한 합의를 전격 파기했다.
이에 앞서 1992년 대선 때는 김영삼 후보에 맞선 이종찬 후보가 경선 직전 포기해 후일을 도모했으나 이때 입은 정치적 상처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선승복의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은 1971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대선 경선.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에게 막판 역전패를 당했지만 김영삼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위해 전국에서 지지유세를 벌였다. 김영삼 후보는 이후 92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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