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폭락세를 보이던 미국과 유럽 증시가 1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재할인율 인하 조치에 급반등했다.
FRB가 민간은행에 직접 빌려주는 자금의 이자인 재할인율을 연 6.25%에서 5.75%로 0.50%포인트 낮춘 것이 시장에 제대로 약효를 발휘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재할인율 인하의 다음 수순으로 정책금리인 연방기금 금리의 인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할인율 인하의 근본 성격을 살펴보면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를 속단하기는 이른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재할인율이란 = 18일 한국은행과 민간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미국의 재할인율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자금을 빌려줄 때 물리는 일종의 벌칙성 금리다.
자금중개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민간은행이 중앙은행에 과도한 벌칙성 금리를 물면서까지 자금을 직접 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충격으로 단기자금 시장(콜시장)에서 실질금리가 폭등, 높은 금리를 물고서도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 경우 민간은행은 중앙은행에 마지막으로 도움을 호소해야 한다.
이 경우 민간은행은 보유중인 유가증권 등을 담보로 맡기고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는데, 이 때 적용되는 금리가 바로 재할인율이다.
미국의 재할인율은 연방기금 금리(연 5.25%)에 1%포인트 높게 책정돼 있으나 이번에 이 격차를 0.5%포인트로 축소한 것이다.
이는 자금경색 상황에서 민간은행들이 단기자금시장에서 돈을 조달하는데 애로를 겪을 경우 종전에는 FRB에 연 6.25%의 벌칙금리를 물고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5.75%에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기자금 시장의 실질금리는 연 5.75% 이하로 안정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실질금리가 오르게 되지만 연 5.75% 이상으로 금리가 치솟을 경우 돈이 필요한 민간은행은 중앙은행에 도움을 청하면 되기 때문에 실질금리가 재할인율 이상으로 오를 수는 없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할인율 제도가 없으나 내년부터 콜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되는 대기성 여수신제도를 통해 재할인율 정책이 시행된다.
◇ 재할인율 인하 조치, 왜 나왔나 =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파문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중앙은행이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 자금경색을 막아왔으나 증시는 계속 폭락하는 등 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양상을 보여 왔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정책금리와 단기시장 금리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평소에도 행해지는 공개시장조작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 유동성 공급규모가 훨씬 컸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가 연 5.25%였지만 실제 단기시장 금리는 한때 연 5.7%대까지 치솟았으며 막대한 유동성 지원에도 시장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이에 FRB가 재할인율을 연 5.75%로 인하한 것은 유동성 공급만으로 안정되지 않는 단기자금 시장에 FRB가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능동적으로 수행, 실질 금리를 5.75% 이내로 묶어두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단기자금 시장에서 마찰적 요인에 의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현상은 진정될 전망이다.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급반등했다.
◇ 정책금리 인하로 이어질까 = 미국 FRB의 재할인율 인하에 대해 시장참가자들은 정책금리의 조기인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정책금리 인하를 속단하기는 힘들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재할인율 인하와 연방기금금리 인하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면서 "재할인율 인하는 단기자금시장에서 마찰적 요인에 의한 신용경색을 해소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에 따른 자금시장의 동요를 이번 재할인율 인하 조치로 통제하는 한편 부실 파문이 다른 영역으로 더 확산되지 않도록 제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한은 관계자는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 "FRB가 굳이 재할인율 인하라는 수단을 쓴 것은 가능한 한 정책금리 인하라는 카드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수익을 노리면서 무모한 투자를 감행해 손해를 본 투자은행들에 FRB가 금리인하로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모럴헤저드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FRB로서는 가능하면 금리인하는 미루고 싶을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예측하는 주체들 대부분이 이번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손실을 입은 투자은행들과 유관 애널리스트들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한은 관계자는 "위험을 무릅쓴 투자로 손실을 본 시장참가자들은 항상 중앙은행의 금리인하를 호소하며 손실을 보전해주기를 기대하는 습성이 있다"면서 "이러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FRB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FRB가 재할인율 인하 조치와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경기하강의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는 표현을 담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재할인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안정되지 않고 증시가 다시 폭락하면서 실물경제에까지 악영향이 미치는 상황이 초래될 경우 FRB로서도 정책금리 인하를 마냥 미루며 계속 버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s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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