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네 날다려 묻지도 않고 네 임의로 한단 말가."
판소리 '심청가'에서 심봉사는 딸 심청이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로 몸이 팔려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대성통곡한다.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고 가슴을 치는 한탄성이 절절하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계곡에 앉아 부채를 쥐락펴락 흔들며 판소리 한 자락 깔아내면 혹서는 어느새 저만큼 물러가고 대신 애절한 소리가 가슴에 뭉클하게 울려온다. 그 안에 녹아 있는 한의 응어리와 신명의 통쾌함이 어우러지며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내는 것이다.
18세기 무렵에 태동해 1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한 판소리는 한동안 우리 연희를 대표하는 장르였다. 소리꾼은 요새로 치면 가수에 해당하겠는데, 창(소리)과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소리판을 질펀하게 흔들었다. 소리판의 양념격인 고수의 북장단도 추임새와 함께 소리판에 한껏 힘을 실어주었다.
판소리는 본래부터 자유분방했다. 대본도 없이 그때그때 재담 등을 끼워넣어 흥을 돋궜다. 몇 시간이고 이어지는 사설을 어찌 다 외워서 풀어낼까 싶으면 놀랍기도 하지만 소리꾼들은 구전을 통해 용케 전승해왔다.
주로 양반계층의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한 판소리는 철종, 고종 시기를 거치면서 왕실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소리꾼들에게 벼슬을 내려 격려할 정도였다. 판소리 6마당을 정리한 신재효도 이때 활동한다.
시대는 소리를 낳았고, 그 소리는 소리꾼을 낳았다. 19세기 전기와 후기에 각각 8명창을 배출한 판소리는 20세기 들어서도 기라성같은 명창들을 탄생시키며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리고 서편제, 동편제, 중고제로 알려진 유파의 계보를 형성해냈다.
이 가운데 영화 '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서편제는 전북 순창 출신의 박유전을 시조로 한다. 서편제는 서민적 감성이 더욱 애절하게 다가오는 유파다. 박유전은 정창업, 이날치, 정재근을 제자로 둔다. 정창업은 다시 김창환, 정정렬을 가르쳤고, 이날치는 김채만의 스승이다.
보성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정재근은 현대 판소리계에 가장 많은 후예를 둔 소리꾼으로 꼽힌다. 그의 제자가 정응민인데, 정응민은 정권진, 성유향, 성창순, 조상현, 박춘성, 김소희 등 우리 귀에 익은 소리꾼을 줄줄이 낳는다. 참고로, 대표적 여류명창인 안숙선은 김소희의 제자다.
해방 후 판소리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야 했다. 이는 서구문화예술의 유입과 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전통문화가 서구문화에 밀리면서 뒷전으로 나앉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제도를 만들어 지정에 나섰다.
현대 소리판에서 가장 유명한 남성 인간문화재는 아무래도 조상현 씨를 꼽아야 한다. 1970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본격 활동에 나선 조씨는 판소리보존회 이사장, 국악협회 상무이사, 광주시립국극단 단장, 남도대 국악과 교수 등의 직함이 말해주듯이 판소리계의 중추로 인정받아왔다.
남원명창대회 제1회 장원과 전주대사습 제2회 장원을 차지할 만큼 그의 소리는 독보적이었다. 이에 힘입어 199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가 돼 후학양성에도 힘써왔다.
이처럼 판소리의 대표 가객으로 군림해온 조씨가 전국국악경연대회 심사와 관련한 금전 수뢰 혐의로 인간문화재 지위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가뜩이나 힘든 국악계로서도 커다란 불행이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문화예술계 전반이 신정아, 김옥랑 씨 등 가짜학위 파문과 미술품 위작 시비로 가뜩이나 시달리고 있는 터에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더 크다. 국악계 거목마저 후진을 대상으로 '돈 장사'를 했다는 비난에 대해 어떻게 변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조씨를 출세시킨 소리는 '심청가'였다. 판소리 속의 심봉사가 육안을 뜨기 위해 딸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면, 조씨는 심안을 되찾기 위해 어제의 자신과 결별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장치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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