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넘는 회담 끝에 6.15공동선언 채택
통일방안.비전향장기수 송환 등 논란 야기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0년 정상회담은 출발이 순조롭지 못했다.
당초 남북 양측은 6월12일부터 2박3일간 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으나 개최 일정이 하루 미뤄진 것.
당시 북한은 6월10일 저녁 늦게 전화통지문을 남쪽에 보내 '기술적인 준비'를 이유로 평양 방문 일정을 하루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
정상회담 일정이 갑자기 연기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에 전달키로 했던 대가가 송금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정상회담 준비 협상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김 전 대통령이 참배토록 요구해 이 협상이 난항을 겪었던 때문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루 늦춰 시작된 정상회담이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서 김 전 대통령을 영접하고 남한의 군 통수권자가 북한 인민군의 사열을 받은 뒤 연도에 늘어선 평양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정상회담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남북정상간 본격 회담이 시작된 것은 두 정상의 만남 이틀째인 14일 오후 3시부터.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담을 가진 뒤 만찬을 갖고 11시20분께 다시 심야회담을 가지고 나서야 15일 자정께 6.15공동선언에 서명하고 두 손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총 5개항으로 된 공동선언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문제까지 포함했다.
하지만 이 선언은 그후 제2항의 통일방안과 관련, 국내적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남과 북이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합의가 사실상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수용한 것이라는 게 비판론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2체제 2정부를 유지하면서 두 정부간 협력체제를 필요로 하고 단계적.점진적 접근방식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북측의 연방제안이 남쪽의 연합제안으로 수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공동선언 제3항에 비전향장기수 문제가 포함된 것도, 남쪽 납북자 문제의 해결책없이 비전향장기수를 송환하는 것은 상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남북 정상간 회담이 이어지는 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각계 각층의 특별수행원들은 북측과 분야별로 별도의 접촉을 가졌다.
정당.사회단체 분야 접촉에서는 남북국회회담과 작가회담, 국제경기 남북단일팀 구성, 2002년 월드컵의 북측 참여 문제 등을 논의했고 김 전 대통령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참석한 가운데 여성분야 접촉을 갖기도 햇다.
또 경제분야 접촉에서는 경협 확대를 위해 남북 당국간 협력과 투자보장 및 이중과세방지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 논의됐으며, 이는 그후 남북 당국간 다양한 후속 협상을 통해 현실화되면서 남북경협을 현재 상황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공항으로 귀환하면서 "남과 북은 공존공영으로 21세기에 세계속의 일류국가로 웅비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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