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중략)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오월' 중)
5월을 좋아했던 '인연'의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 결국 자신의 생일인 5월29일 세상과의 인연을 접었다.
25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인의 영결미사가 29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 및 소설가 조정래씨,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조정래씨는 대표 조사를 통해 "많은 문학인들이 때묻고 추하게 변하는 현실에서 선생님은 항상 맑고 깨끗했다"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온유하게 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칼날의 예리함으로 대했던 선비 같은 분"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고인은 1세기 가까이 역사와 함께 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에서 비켜 살아왔다고 죄스러워하곤 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소임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제자 대표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민족이니 역사를 생각지 않은 분은 아니었지만 작고 약하고 착한 것을 더욱 사랑했다"며 "그림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복사판 그림 한 장, 베토벤 전집 하나 소유하지 않으셨던 삶 자체가 '무소유'였다"고 고인의 삶을 기렸다.
이해인 수녀는 '피천득 프란치스코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조시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존재 자체로 수필이 되고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된 분, 생전에 뵙고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선생님…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작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김우창 교수는 "선생님은 맑은 것이 가려지기 쉬운 세상에서 맑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또 그 맑음은 근접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셨다"며 "순수하고 참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
(서울=연합뉴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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