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여한구기자][미 정부·의회 노동·환경기준 합의로 재협상론 부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양국 국회 비준절차를 앞두고 새로운 돌발변수가 터졌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11일(미국시간 10일) 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기준으로 삼아야 할 노동 및 환경기준에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국제적 노동·환경 협약의 의무조항을 FTA를 체결한 미국과 상대 국가가 지키도록 법제화하자는게 주요 골자다.
미 의회에서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의 주장이 관철된 이번 합의는 한·미 FTA 협상 타결 내용과는 동떨어진 사안이 많아 미국 행정부가 이를 근거로 재협상을 요구할 공산이 클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지난달 웬디 커틀러 FTA 미국측 협상대표가 노동·환경분야를 중심으로 재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도 맥락이 닿아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측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재협상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미국측 요구가 완강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를 무조건 배척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한·미 FTA 최종 타결의 중대 변수로 대두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복수노조 연기 쟁점 대두되나=미 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결사의 권리, 단체교섭에 관한 권리 등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무역협상 기준으로 포함시키도록 했다.
이 경우 우리 정부에 부담이 가는 주요 항목은 ILO가 지속적으로 개정권고를 한 내용이기도 한 공무원노조의 단결권 및 단체행동권(파업권) 허용과 복수노조 도입이 될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한미FTA 협정 타결문에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보장과 보호수준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의무' 로 돼 있으나 미 정부·의회 합의안을 적용하면 '노력'이 강제규정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국민정서는 물론이고 정부도 공무원노조의 파업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집해온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기는 곤란한 여건이다.
특히 복수노조 도입 건은 지난해 노·사·정이 극심한 진통을 겪은 끝에 3년간 시행을 미뤄 2010년부터 도입키로 합의를 도출한 부분이어서 조기 도입은 사실상 실현불가능하다.
만약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한국노총을 필두로 한 노동계와 재계 양측의 극렬한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돼 국내 노-정 관계는 파국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에 따라 노동당국은 관련 항목에 대한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현실화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일부 주만 공무원노조의 파업권을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만 강요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미국 내부의 문제일 뿐으로 국제협상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한국이 ILO가 정한 핵심협약 8개 중 4개를 비준한데 비해 미국은 2개에 불과하다. ILO의 187개 전체협약 가운데서도 한국은 22개를 비준했으나 미국은 14개 밖에 되지 않는다.
◇환경 기준도 준수 조항으로=미 정부·의회 타협안에 의하면 미국과 FTA를 체결한 4개국에 대해 다국적 환경협약의 의무조항을 실천하기 위한 법률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는 국회 비준만을 남겨두고 있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FTA 재협상 요구의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한미 양국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환경법의 효과적인 집행에 실패하지 말아야할 의무 △기존 환경보호수준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 등 '의무' 조항을 '준수'로 고칠 것을 미국측에서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언적 수준에서 강제적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으로, 이처럼 세밀하게 준수사항이 규정되면 한·미 FTA의 환경분야 주요 합의 내용인 'FTA 분쟁해결절차'의 실효성도 커지게 된다. FTA 협상문에는 분쟁해결을 위해 구성된 중재패널의 권고안을 불이행하면 1500만불 이하의 과징금 부과도 가능토록 돼 있다.
이에 대해 환경당국은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미국 정부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대부분의 선진국이 가입한 온실가스 감축협약에 미가입하는 등 한국에 비해 환경법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게 주 배경이다.
환경부 실무자는 "양국의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면 모를까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추가로 협상할 내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재경부 고위간부도 "협상이 끝난 것을 국내적인 상황 때문에 다시 하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은 그대로다"며 재협상 불가론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당초에는 미국 민주당과 정부 간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당황해 했다. 재협상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조기 한·미 FTA 타결을 원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뜻밖의 '암초'가 생긴 셈이다.
여한구기자 ha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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