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경숙기자][[투자로 좋은 세상 만들기]<8-2> 사회책임투자 발전 과제]
조합자금으로 친노동적 사회책임투자(SRI)펀드를 만들고 싶었던 민주금융노조는 지난 1월, 그 꿈을 일단 접어야 했다. 어떤 자산운용사도 상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 상 '펀드투자자가 특정 주식 매입에, 펀드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저마다 수십개의 펀드를 운용한다. 펀드마다 투자자가 다르다. 사회적 가치관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펀드 간 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준법감시인은 민주금융노조에 펀드보다는 투자일임 내지는 특정금전신탁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공모펀드를 통해선 투자자가 특정주식 매입을 운용사에 요청할 수도 없고, 의결권 행사에 관여할 수도 없다.
민주금융노조와 소속 노조들은 결국 직접 해당 주식을 사들이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이들이 현재 매월 사들이는 주식 규모는 월 2억여원을 넘나든다. 특히, 현대증권 노조는 월 1억5000여만원씩 현대증권과 현대상선 주식을 사고 있다.
◆SRI 발전하려면 전문운용사 필요
SRI 소개 책자나 기사를 보고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은 열에 아홉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투자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장밋빛 구호와는 달리, SRI펀드 편입종목은 일반 주식펀드와 비슷해 보인다. 자신의 사회관, 가치관에 따라 의결권 행사도 할 수 없다.
SRI펀드한테도 사정은 있다. SRI에 맞는 종목을 고르려 해도 공개된 기업정보가 적어 분석이 어렵다. '투자로 좋은 세상 만들기' 종목선정위원회도 처음 분석을 시작할 땐 평화주의자의 종목군, 친노동적인 종목군도 고를 계획이었지만 노동, 인권 관련 기업정보의 한계로 포기해야 했다.
외국의 SRI 진영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외국은 한국과 출발점이 달랐다. 한국에서 SRI펀드는 자산운용사들이 '신상품' 개념으로 출시했지만 영미권에선 종교인 등 투자자들의 요구로 출시됐다.
도미니, 캘버트 등 SRI 전문운용사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도 수요, 즉 사회적 투자자의 존재에 있었다. 그래서 해외 SRI전문운용사들은 더 적극적으로 기업에 정보 공개를 요구한다.
반면, 투자자 운동 없이 시작된 국내 SRI펀드 운용사들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 위주로 종목을 선정한다.
◆정보공개 요청, 의결권 행사 등 주인의식 먼저
그렇다고 SRI운용사의 출현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터. 국내 SRI의 선도자들은 "의결권 행사라는 한계는 주식이나 랩어카운트 투자로, 정보 공개 부족이라는 한계는 SRI 운동으로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은 "국내에 아직 SRI전문 운용사가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자기 회사 주식 투자에서부터 SRI를 실천하기로 했다"며 "펀드를 통한 SRI에 한계가 있다 해도 주주로서 권리 행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SRI투자자로서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장영옥 기업책임시민센터 사무국장은 "투자의 사회책임성을 높이려면 투자자들이 자기 가치관에 따라 기업에 적극적으로 정보 공개를 요청하고 의결권 행사 등 의결권 행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SRI펀드나 기업에 분석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SRI, 공시 제도의 개선을 제안한다. 정해봉 에코프론티어 사장은 "연기금, 퇴직연금과 같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필요로 하는 자금들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 SRI 이슈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혁준 라임글로브 사장은 "SRI의 공통된 지표와 정보공개가 미흡하다는 점, 지표와 기업가치의 관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연구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런 과제는 정부 차원의 공시제도 개선을 통해서만이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숙기자 ks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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