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향하는 베이스 가수 연광철

  • 등록 2007.04.19 0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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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파르지팔'(구르네만츠 역)이 끝나면 바로 빈에서 '파우스트'(메피스토펠레스 역)를 합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베르디의 '아틸라'(아틸라 역)를 하게 돼 있어요."
유럽, 북미의 주요 오페라하우스를 안방처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오페라 가수 연광철(42) 씨의 향후 일정 중 일부다. 오페라에 밝은 사람이라면 그 공연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개 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베이스 가수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를 하나하나 밟고 있는 것이다. 내년 여름 독일 바이로이트축제 무대에 올려지는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 신작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맡게 된 것은 그가 이미 세계 정상급 베이스 가수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제가 이렇게까지 활동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페라의 작은 역들을 맡아오면서 돈카를로의 필립왕이나 구르네만츠 역을 내가 언제 할 수 있을까 생각해 왔었죠."
가족들과의 만남과 내년 예술의전당 20주년 기념 '파르지팔' 공연 협의를 위해 서울에 잠시 들른 연 씨는 기자와 만나 "꿈에 그리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온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가 세계의 바그너 광신도들에게는 '성소(聖所)'와 같은 바이로이트축제극장 무대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하게 된 것은 한국 오페라계 전체로 볼 때도 하나의 '사건'이다.
바그너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882년 그의 마지막 오페라로서 완성된 '파르지팔'은 바그너 작품 중 가장 종교적인 것이다. 파르지팔 역이 있지만 실질적인 이 오페라의 주역은 구르네만츠다.
"성배(聖杯) 수호기사인 구르네만츠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을 하지요. 성창(聖槍)을 잃어버린 배경, 수도원 앞에 사악한 무리들이 떼지어 살게 되고 또 쿤드리를 만나게 된 얘기 등 오페라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을 하게 됩니다."
바이로이트축제 극장 무대의 '파르지팔'에서 이 구르네만츠 역은 그간 로버트 홀(Holl), 한스 조틴(Sotin), 쿠르트 몰(Moll), 마티 살미넨(Salminen) 등 세계적인 명성의 베이스 가수들이 맡아왔다.
"바이로이트에서는 새 역을 맡으려면 누구든 오디션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다른 무대에서 아무리 풍부한 경험을 쌓은 가수라 하더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플라시도 도밍고도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기 위해 오디션을 받았죠."
연씨는 1996년에 바이로이트축제극장 무대에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 나오는 야경꾼으로 데뷔했다. 그 후 2002년에 '탄호이저'의 헤르만 영주 역을 맡아 '바그너가 원했던 대로 해석해 역을 제대로 소화해 낸 가수'라는 호평을 들은 후 급부상했다. 이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왕, '니벨룽의 반지'에서 거인 파프너 또는 훈딩 역 등 해마다 두 역 정도를 맡아왔다.
그는 내년 4월 예술의 전당 20주년 기념 '파르지팔' 공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이로이트축제극장 무대 밖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해 보았으면 하는 희망이 강하게 있었는 데다 국내 오페라팬들 입장에서는 바이로이트축제극장판 '파르지팔'을 볼 수 있는 매우 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간 바이로이트축제극장판 '파르지팔'이 바이로이트 외부로 나간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예술의전당이 마침 '파르지팔'의 국내 공연을 결정해 주어서 무척 기쁘고, 또 바이로이트축제의 볼프강 바그너 총감독과 그의 딸 카타리나가 이 작품의 서울 공연을 허락한 것이 고맙습니다. 저도 오래 전에 구르네만츠 역을 맡을 것으로 결정돼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9일 독일로 돌아가는 그는 올해 공연스케줄도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이번에 돌아가면 곧바로 빌바오에서 '마적'을 하게 됩니다. 그 게 끝나면 베를린에서 '돈 카를로'를 하고, 빈에서 '로엔그린', 이어 바이로이트에서 '라인골트'와 '발퀴레'를 하죠. 바이로이트가 끝나면 8월말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돈 카를로' 신작을 합니다. 다음에는 콘서트가 많네요. 룩셈부르크에서 '발퀴레'를 콘서트 형식으로 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창회를 한 다음에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을 합니다. 11월말에는 뮌헨 가서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콘서트를 네 번 하는데 그러면 올해가 가죠."
그에게 이번 고국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가족들과 만나는 것 같다. 기자의 요청으로 부인 박진하 씨와 함께 나타난 그는 자주 미소진 얼굴에 그윽한 눈빛으로 부인을 보며 도움에 늘 감사한다고 얘기한다.
"이 사람은 자신이 내조한 게 없다고 하지만 같이 성악을 했기 때문에 제 사정을 너무 잘 알고, 힘들 때마다 내색하지 않고 많은 도움을 줬죠. 제가 노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어요."
그는 수년 전 베를린 근교에 아주 예쁜 집을 하나 사 3년 가까이 살았다. 그러나 공연 스케줄 때문에 너무 바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지난해 초 부인과 현재 12살인 쌍둥이 두 딸이 서울로 완전히 이사했다고 한다.
"양쪽 부모님이 모두 살아계셔 그 분들 곁에 사는 것이 효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 부터 한국의 문화도 알고 정체성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 여기서 살기로 했지요. 저는 틈날 때 마다 왔다갔다 하죠."
대학 때 성악을 전공하다 오페라 '마적' 공연을 같이 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만난 박진하 씨는 요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고 있다. 열심히 했는데도 남편 옆에 서면 자신의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위축된다는 것이 농담으로 하는 부인의 말.
박씨는 "제가 훌륭한 지휘자가 돼서 종교곡이나 미사곡 같은 것을 지휘할 수 있게 되면 당당히 남편을 캐스팅해서 같이 음악을 할 것"이라며 남편을 마주보며 함께 웃는다.

◇베이스 가수 연광철은
▲1965년 생. 충주의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청주대학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이어 불가리아 소피아 음대,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1993년 파리 국제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우승과 동시에 도밍고로부터 '세계 오페라계의 떠오르는 보석'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10년간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하다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로부터 초청이 쇄도하면서 2004년 독립했다. 매해 바이로이트축제에 초청되고 있으며 다니엘 바렌보임, 피에르 불레즈, 주빈 메타, 제임스 레바인, 크리스티안 틸레만, 켄트 나가노 등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최정상의 무대에 서고 있다. 내년에 스테판 헤르하임이 연출하는 바이로이트축제극장의 신작 '파르지팔'에 구르네만츠 역으로 캐스팅됐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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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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