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상배기자][편집자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성장의 '보증수표'인가, 몰락으로 가는 '종속의 문'인가. 둘 다 아니다. 결과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정부가 성안 중인 피해 지원 대책이나 구조조정 방안도 그 가운데 일부다. 정부가 한·미 FTA 피해를 정확히 분석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다. 구조조정은커녕 지원금을 노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만 판칠 수도 있다. 한·미 FTA 후속 대책에서 보완하고 경계해야 할 점을 5회에 걸쳐 점검한다.
[FTA 피해지원 이렇게<1>.. 주먹구구식 피해분석 경계를]
'2조원'과 '1000억원'.
같은 이름으로 나온 숫자라면 믿을 수 있을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미국산 오리지널약의 특허기간 연장으로 국내 제약업계가 보게 될 연간 피해액을 놓고 업계와 보건복지부가 각각 추정한 금액이다.
양측 모두 과학적인 분석 결과와 다소 거리가 있다.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연간 11조원. 이 가운데 미국계 제약사의 총매출이 2조원 정도다. 특허기간 연장 만으로 관련 총매출만큼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업계는 주장하는 셈이다.
복지부의 추정치는 국내 제약사의 특허업무 담당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출됐다. 담당자들의 주관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농업분야의 예상 피해액도 크게 엇갈린다. 정부는 연 8000억~9000억원으로 추정한 반면 농민단체들은 2조원 이상을 주장한다. 수산업분야에서도 정부는 연간 피해액을 최대 850억원으로 봤지만 어민들은 그 2배 이상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한·미 FTA 영향 분석을 거쳐 6월 말까지 각 분야의 피해 지원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피해 분석부터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실태조사에 바탕을 둔 정확한 피해 추정의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탓이다.
한·칠레 FTA 체결 당시 최대 피해분야로 지목된 포도의 경우 오히려 재배면적이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정부 관계자는 "부처별로 산출한 분야별 예상 피해액을 합하고, 거시분석을 통해 전체 피해액을 구한 뒤 2가지를 끼워맞출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정확한 피해 추정은 어렵다"고 털어놨다.
'짜맞추기' 이상의 피해 분석을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사전 조사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정광호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는 "정확하고 과학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사전에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해 피해 집단을 상대로 충분한 기초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시간이 없으니 어림짐작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예산 낭비를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피해 분석에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굳이 4월 말이라는 시한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보다 정확한 피해 분석을 위해 정부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변수들은 뭘까.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한·미 FTA와 무관한 폐업이나 전업이다. 정부는 한·미 FTA 체결시 폐업지원금 대상을 현행 키위, 시설포도, 복숭아에서 그외 품목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쇠고기, 감귤 등이 새로운 대상으로 거론된다. 문제는 한·미 FTA와 상관없이 감귤농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던 농가도 지원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배제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둘째 다른 품목과의 연관성이다. 상품마다 보완재 등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고 관세 인하가 이뤄지면 전체 쇠고기값도 떨어질 공산이 크다. 가격 하락으로 쇠고기 소비가 늘어나면 덩달아 많이 팔리는 상품들이 있다. 고추, 마늘, 양파 등이 그렇다. 모두 한·미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품목들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요가 늘어날 요인도 생긴다.
셋째 소비의 가격탄력성이다. 상품가격이 내리거나 값싼 미국산 상품이 등장했을 때 소비자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 파악해야 한다. 미국산 명태가 값싸게 들어왔을 때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국산 대신 미국산을 선택할 지 추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한·미 FTA와 무관한 폐업이나 전업에 대해 분명한 지원금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상호 파급효과와 소비의 가격탄력성까지 반영하는 과학적인 피해 추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상배기자 p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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