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절차가 본격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현대건설 인수합병(M&A)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현대건설 2대 채권기관인 산업은행은 5일 현대그룹이 옛 자회사인 하이닉스와 벌이고 있는 소송 결과를 지켜본 뒤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산은의 이같은 입장은 현대건설 M&A 장기 지연의 단초가 되고 있는 현대그룹의 입찰참여 자격 여부(구사주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매각절차에 돌입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M&A가 시작 전부터 파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연내 매각 진행이 물건너 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주채권기관이자 매각주관사인 외환은행은 그러나 여타 채권단 주주협의회 소속 기관들의 의견을 모은 뒤 조속한 매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전체 채권단의 협의 과정에서 이번 M&A의 파행 우려를 씻어낼 만한 '현답'이 도출될 지 주목된다.
◆느긋한 산은 "매각서두를 이유없다"= 산업은행 고위관계자는 5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피소된 사안은 현대건설 매각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재판 결과를 지켜본 후 매각을 진행하는 것이 모든 절차면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얼마 전 끝난 LG카드 매각과정의 교훈을 고려할 때 절차상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신중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사주 문제' 와 관련된 유사 사례의 법적 판단을 지켜본 후 현대그룹의 입찰참여 자격을 가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앞선 지난 9월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전 임원들의 비자금 조성 등으로 손해를 봤다며 서울중앙지법에 법적 판단을 구했다. 하이닉스는 고 정 회장의 지위를 승계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하이닉스 전 경영진들을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소송은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산은은 이와 함께 "기업가치 면에서도 (실적이 호전되고 있는) 현대건설을 서둘러 매각할 이유가 없다"고 못박았다.
◆ 현대그룹-하이닉스 소송 구사주문제 '잣대'= 산은이 이처럼 '구사주 문제 선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매각 진행과정에서 혹시 불거질 수 있는 '논란의 싹'을 미리 자르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현대그룹에 대한 객관적 검증없이 입찰 참여를 허용할 경우 여론의 호된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은 하이닉스와 현 회장간 소송건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전 참여 자격을 객관적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정상화된 기업의 과거 사주에게 옛 부실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와 함께 현 회장의 고 정몽헌 회장 지위 승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총재가 지난 달 국정감사에서 "구사주 문제는 법률적, 사실적 판단보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발언한 점을 감안하면 여론의 정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법원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 매각주도권 쥐려는 포석(?)= 산은이 채권단 내 역학구도에서 매각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현대건설 매각은 채권기관 주주협의회 소속 9개 기관 중 운영위원회 멤버인 외환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3개 은행이 주도하고 있다. 매각제한 주식수 기준으로 최대인 외환은행이 매각주관사 역할을 맡고 있다.
산은은 그러나 매각 진행을 서두르고 있는 외환은행과 달리 김창록 총재가 지난 8월 구사주 문제를 제기한 이후 매각 절차와 관련해 일언반구도 내놓지 않아 왔다. '구사주 문제 선결'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며 '침묵'으로 일관한 셈이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과 우리은행 등이 추진해 온 매각주간사 선정은 번번이 유보됐다. 이런 상황에서 산은은 한 발 더 나아가 매각 진행 시점을 소송 결과 후로 못박음으로써 매각을 진행하더라도 주도권은 쥐고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 속타는 외환ㆍ우리銀 "매각 서둘러야"= 산은의 느긋한 입장과 달리 외환은행과 우리은행은 '구사주 문제'와 현대건설의 기업가치 전망을 이유로 매각을 끝간 데 없이 미룰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산은의 논리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속내도 숨기지 않고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구사주 문제는 이미 채권단 모두가 인지했던 부분이므로 매각주간사 선정 후 신중한 법률 검토를 거쳐 매각 준칙에 입각한 판단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산은은 향후 현대건설의 실적 호전 가능성이 커져 매각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향후 기업전망 부분에 대한 가격은 지금 매각하더라도 프리미엄에 모두 반영되게 마련이므로 마냥 기다리자는 산은의 주장을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런 입장에 따라 외환은행은 다음주 초 채권기관 주주협의회 소속 9개기관의 의견을 물어 매각 진행 여부를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운영위원회 3개 은행의 의견 취합이 힘든 만큼 나머지 채권단을 뜻을 반영해 신속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매각 진행 여부는 내주 중 가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채권단이 산은을 배제하고 매각을 진행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인데다 갈등과 파행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커 물리적으로 연내 매각 돌입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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