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당쟁' 거부한 미국의 한국사가

  • 등록 2007.04.12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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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와그너 논문집 선봬



무오사화에서 기묘사화에 이르는 각종 사화(士禍)를 새로운 통치양식의 발달로 해석한 역사학자가 있다. 그러면서 이 역사학자는 사화가 폭군에 맞서 정직하고 올바른 유교 도덕주의자들이 충돌한 결과라는 일반론도 거부했다.

그에게 사화란 이론적으로는 무제한적 권위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는 군주와 유교윤리를 통해 이런 왕권을 한정하고 구속하려는 양반 엘리트 성원 사이에 전개된 격렬한 구조적ㆍ제도적 갈등의 산물이다.

그는 또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이라는 사화의 밑그림 자체도 부정했다. 조선사회 지배엘리트는 이질적 존재가 아니라 동질적 존재였으며, 그에 따라 사화에 연루된 엘리트 대부분은 한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거주자로서 정치적 이해와 이념에 따라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조선민족이란 원래가 당파적이라는 일제 식민사학의 해묵은 악선전을 한국학계가 돌파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 단초를 마련한 이는 한국인이 아니라 에드워드 와그너(1924-2001)라는 미국 역사학자였다. 미군정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하버드대에 정착해 1950-6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한국사를 개척한 '원훈대신'이다.

그는 조선왕조 지배엘리트 분석을 위해서는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인 사마방목(司馬榜目)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에 조선왕조가 개국한 1392년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된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748회에 걸쳐 실시된 문과 급제자 1만4천607명은 물론이고 이 기간 동안 배출된 생원ㆍ진사시 급제자 4만649명의 개인신상카드를 작성했다.

전북대 송준호 교수와 함께 한 이 프로젝트는 완성에 40년을 소요했으며, 그 성과는 2003년에 CD-롬으로 국내에 출반되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와그너는 홍경래 난이 일어난 평안도 정주가 조선 후기에는 한양 다음으로 문과 급제자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서북지역에 대한 차별에서 홍경래 난이 비롯되었다는 역사학계 통설이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그는 족보와 호적의 가치에 주목한 대표적 초기 연구자로 꼽힌다. 1663년 서울' 북부장호적'이란 자료를 분석했더니 전체 인구 중 노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5%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비록 특정 지역 사례이긴 하지만, 이는 임진왜란 이후 신분제 해체가 급격화하고 그에 따라 양반이 급속하게 늘었다는 또 다른 학계 통설을 근본에서 흔들었다. 신분해체가 초래한 현상은 양반증가라는 '상향 평준화'가 아니라 노비를 불린 '하향 평준화'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성과들을 담은 와그너 교수의 각종 논문이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동아대 이훈상 교수와 같은 대학 손숙경 강사에 의해 번역출간됐다.

이 교수는 와그너 역사학에 대한 음미가 국내에서는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한국의 역사는 한국 사람만이 파악하고 기술할 수 있다는 일종의 본질주의"를 지목하기도 했다. 527쪽. 3만원.




(서울=연합뉴스) taeshik@yna.co.kr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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