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현 감독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만든 배용균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극장에서 우연히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는 배용균 감독을 찾아갔고,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의 조감독을 거치며 영화를 배웠다고 한다.
[배고픈 하루]는 김동현 감독의 영화 중 세간에게 공개된 첫 영화다. 이전 단편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데, 김동현 감독은 ‘너무 못 만들어서 실망했다’고 그 영화들을 표현한다.
[배고픈 하루]는 원래 장편으로 계획된 영화에서 캐릭터 하나를 빼 단편 시나리오로 완성한 것이고, 이 시나리오가 영진위의 독립영화제작지원작으로 선정되면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배고픈 하루]는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독립영화계에 김동현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배고픈 하루]
배가 고픈 부녀가 있다. 너무 배가 고파 움직일 힘도 없는 딸은 아빠에게 배가 고픈데 물 좀 더 마셔도 되냐고 처량하게 묻는다. 많이 마셨으니 그냥 자라고 하는 남자도 배가 고파 힘이 없긴 마찬가지다.
남자는 원래는 돈 잘 버는 근로자였는데 목 디스크를 다치는 바람에 돈을 벌지 못해 집에 수돗물 말고는 먹을 것이 없다. 남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집 밖으로 나간다. 그는 구걸을 해보지만 돈 몇 백 원만 모일 뿐이고 참다못해 도둑질을 해보려고 하는데 용기는 없거나 목이 불편해서 실패만 거듭한다.
김동현 감독은 [배고픈 하루]를 자신의 첫 리얼리즘 영화라고 말한다. 그는 (배용균 감독의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반대로 리얼리즘에 가깝게 다가간 첫 영화라고 한다. 영화는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지만 블랙 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웃기는 영화기도 하다.
김동현 감독은 웃긴 영화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촬영을 끝내고 편집을 하는데 편집기사가 하도 웃어대서 ‘이 영화가 웃겨?’라고 김동현 감독이 물어봤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영화는 IMF 이후 늘어난 극빈층의 배고픈 하루를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처량한 삶을 슬프다고 볼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라고도 볼 수도 있다. 너무 배가 고픈 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상황은 유머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라 가슴이 아프지만, 마냥 가슴 아픈 드라마라고 하기엔 영화가 시침 뚝 떼고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구석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별다른 수사 없이 뚝심 있게 잡아내는 김동현 감독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별다른 수사가 없어서 사뭇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35미리로 촬영한 화면은 아무 치장도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무덤덤하고 이야기도 단순하다. 하지만 리얼리즘에서 판타지로 변하면서 감정이 차오르는 마지막 장면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2004년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은 ‘더운 여름에 무거운 옷을 입고 낑낑대다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시원하게 달려가는 기분이 느껴진다’고 마지막 장면을 표현했는데, 나 역시 힘든 현실을 영화의 힘으로 벗어나 한 단계 위로 튀어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 힘은 그 다음 작품 [상어]로 이어진다.
[상어]
디지털로 촬영된 장편영화 [상어]는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대구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대구의 무더운 날씨와 대구 독립영화계의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영화다. 영화는 무더운 여름의 대구에서 서로 엇갈리는 여섯 사람을 다룬다. 우연히 백상어를 잡은 남자는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대구로 향한다. 윤간을 당하고 정신이 나간 여자는 대구 시내의 공원에 머물며 바람이 불길 기다린다. 출소 후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지 못해 공원을 배회하는 사내가 있다. 친구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지만 도박에 빠져서 방을 나가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 이들은 더운 대구에서 마주치고 스쳐가며 얽히고설킨다.
삼십 몇 도의 끈적이는 여름에는 누구도 만나기 싫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가 짜증스러울 뿐이다. 사내는 미친 여자가 쫓아오는 것이 싫고, 친구는 상어를 보여주려고 대구로 왔다는 남자가 싫다. [상어]의 인물들은 서로 관계를 맺거나 혹은 맺지 않길 원함으로서 결국 어느 쪽도 되지 못한다. 낮의 열기가 사라지고 밤이 되면 인물은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상황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마치 화학약품처럼 서로에게 반응해 작용하며 새롭게 변화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구에 비가 내린다. 더운 밤의 열기를 날리는 시원한 비는 에너지가 되어 대구라는 공간을 꽉 채운다.
영화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뜬금없는 백상어만큼이나 상징적이며, 표현 방식도 대담하다. 정지화면이 길게 등장하기도 하고 여인이 미치는 순간에 등장하는 바닷가 장면처럼 감정의 흐름상으로는 맞지만 이야기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쇼트가 갑작스럽게 삽입되기도 한다. 어디서 보니까 화려한 수사 없이 단순하게 이어간 힘이 돋보이는 영화라고 하던데 그 표현도 맞고, 추가하자면 보기보다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스토리의 순서가 아닌 스토리가 상징하는 이야기의 흐름순서로 배열돼있다.
나는 [상어]를 보고 이런저런 영화구나라고 생각해서 김동현 감독에게 영화의 의미를 여쭤본 적 있는데, 감독님이 “어... 내가 의도한 건 그게 아닌데...” 라고 대답해서 당황했던 일이 있다. 조영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세 번을 봤는데도 잘 잡히지 않는 작품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가 개봉된 것도 아니고 내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것도 아니니 자세한 소개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언뜻 보기에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임이 보이는 백상어가 희망을 상징한다는 것과, 그 희망을 찾아 순수로 회귀하려는 타락과 욕망과 속죄의 과정이 영화의 주제라는 점이다.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기도 하다. 클라이막스에서 결말로 향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지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 있는 영화였다. 당신 역시 쉽게 생각하고 머리로 덤볐다가는 에너지에 지쳐 쓰러질지 모른다. 자세한 건 영화가 개봉하면 직접 확인해 보시라.
우리는 간결하지만 어렵고 쉽지만 힘 있는 영화 만드는 감독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내가 김동현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영화도 훌륭하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준 솜씨가 앞으로 만들 새로운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충무로 밖에서 혼자 작업하며 모든 한국 영화의 전통과 동떨어진 작업을 하는 배용균 감독의 영향을 받은 감독이면서 또한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기도한 김동현 감독이 앞으로 펼쳐놓을 영화의 지형도는 흥미진진하다. [상어]가 빨리 일반에 공개됐으면 좋겠는데, 완성 된지 꽤 됐지만 영화제에서 간헐적으로 상영됐을 뿐 정식 개봉은 못하고 있다.
[방문자]와 [후회하지 않아]의 바통을 넘겨받았으면 하는 소망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다. 현재 김동현 감독은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번 영화 역시 영진위의 제작비지원작으로 선정됐다. 대폭 늘어난 예산 덕에 디지털로 계획했던 영화를 35mm로 바꿨고 규모도 커졌다고 한다. 한국에 온 조선족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추운 겨울에 벌이는 며칠 동안의 일이라고 하는데 [상어]와 겹치는 것도 같고 상반되는 것도 같다. 나는 뜨거운(!) 관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김이환 칼럼니스트
제목 : 배고픈 하루 a starving day
감독 : 김동현
주연 : 주진모, 권예원, 조갑봉
정보 : 2005 / 극영화 / 35mm / 19분
제목 : 상어 shark
감독 : 김동현
주연 : 김미야, 홍승일, 구성환, 홍기준
정보 : 2006 / 극영화 / DV / 108분
출처:네오이마주 http://www.neoimag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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