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칸하나다] “일본인들, 한국 태극기 세력 지원해서 문재인 탄핵시켜야”

“우리 일본인들이 해야 할 일은 ‘공산주의자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그들 한국 보수층을 지원해서 하루빨리 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일이다”

미디어워치 편집부 mediasilkhj@gmail.com 2019.08.15 11:40:08


※ 본 칼럼은 일본의 유력 시사잡지 ‘게칸하나다(月刊Hanada)’의 인터넷판인 ‘하나다프러스(Hanadaプラス)’에 2019년 4월 25일자로 게재된 ‘한국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는 ‘주체사상파’(韓国を裏で牛耳る「主体思想派」)를 ‘게칸하나다’ 측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번역 : 박아름)




한국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는 ‘주체사상파’

(韓国を裏で牛耳る「主体思想派」)



[저자소개] 본 칼럼의 저자는 노무라 하타루(野村旗守) 씨로, 1963년생에 릿쿄(立教)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재일외국인을 위한 잡지 등의 편집자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조선 이권의 진상(北朝鮮利権の真相)’(다카라지마분코(宝島社文庫)), ‘The 재일특권(ザ・在日特権)’(다타라지마분코, 공저), ‘현대일본의 암흑을 움직이는 재일인맥(代日本の闇を動かす「在日人脈」)’(다카라지마SUGOI분코(宝島SUGOI文庫), 공저) 등 다수가 있다. 



또 하나의 3.1 시위


3월 1일 한국에서는 매년 3.1절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조선전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독립운동의 기념일) 행사가 있는데 올해는 특히 100주년기념이라 대대적인 식전(式典)이 개최되었다.


이와 발 맞춰 일본 각지에서도 여러 행사가 열렸는데 이중에서 이색적인 것은 도쿄역 주변을 약 1시간에 걸쳐 행진한 ‘3.1 아시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행진(三・一アジアの自由と平和を守る行進)’이었다.


한국 측 주장에 영합하여 ‘암흑의 일제식민지시대’나 ‘지금도 계속되는 차별과 헤이트스피치 문제’를 소란스럽게 주장하는 반일집회가 연일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3.1절 당일에 개최된 이 데모행진에는 약 200명의 참가자가 태극기와 성조기, 일장기를 흔들며,


“김정은, 북한은 납치피해자 전원을 돌려보내라(金正恩、北朝鮮は拉致被害者全員を返せ)”

“자유를 사랑하는 한국국민들이여, 일어나라(自由を愛する韓国国民よ立ち上がれ)”

“일··한이 결속하여 아시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日米韓が結束してアジアの自由民主主義を守ろう)”

“중국공산당 전체주의는 일본에서 나가라(中国共産党全体主義は日本から出ていけ)”


... 등등 일·한(日韓), 일··한(日米韓)의 결속을 호소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전체주의를 배척하는 구호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다.




시위는 평일 오후에 있었고, SNS를 통한 고지뿐이었는데 홋카이도에서 규슈, 한국에서도 지원자가 결집하여 일·한연대와 일··한동맹의 강화를 호소했다.


위안부문제를 필두 현안으로 원래 일·한관계가 양호하지는 않았지만 작년 말의 한국 대법원에 의한 너무나 불합리한 ‘징용공 판결’과 자위대기에 대한 레이더조사 사건, 올해 한국 국회의장에 의한 천황 사죄 요구발언 등이 이어진 속에서 일본인, 특히 보수층의 반한감정이 절정에 달한 상황에서 개최된 시위였다. 


촛불시위의 주도자


그런 보수진영에서 이렇게 냉정하고 현실적인 운동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일·한의 분단, 일··한의 분단이야말로 지금의 난폭하고 교만한 한국을 미치게 만든 원인이며,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는 북한과 배후조종하는 중국의 외교, 군사전략적 기정노선이자 기저노선이기 때문이다.


즉 일·한외교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의의 깊은 가두행동인데 이를 보도한 언론은 재일한국인계 토오이츠닛포(統一日報, 통일일보)뿐이다. 이 중요성을 일본 언론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부 보수론자들의 주장처럼 삼성의 목을 죄서 한국이 항복하게 되면 많은 일본인들은 꼴좋다며 속이 후련하겠지만 그 결과 한국이 중(中)·조(朝) 적색연합에 흡수되어 쓰시마해협의 저편까지 새빨갛게 물들어버린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정학적 견지에서 생각하면 ‘고소하다’고 한가하게 웃으면서 구경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이 제19대 한국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2017년 5월. 새삼스럽게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만 박근혜를 퇴진에 몰아간 것은 전년 가을에 시작된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가두운동, 촛불시민혁명이라고 불리는 촛불시위였다.


2016년 10월 29일에 서울에서 최초의 촛불집회가 열린 후, 시민의 무리는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12월 초순의 최고조 때, 참가자는 서울시만 200만 명을 넘었다. 주최한 ‘박근혜 퇴진 긴급국민행동’에는 전국 70도시에서 2300개를 넘는 시민단체가 참가하여 20주에 걸친 기간 동안, 전국각지에서 누계 약 1600만 명이 거리에 나섰다고 한다. (주최자 측 발표)


마치 100년 전의 3.1독립운동이 현대로 되살아난 것 같은 거대한 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도대체 누구였는가. 계기가 된 것은 박근혜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오랜 친구인 실업가한테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편의를 제공했다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터닝 포인트는 그로부터 100일 이상 전, 2016년 6~7월에 일어났다.


박근혜 전락의 원인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은 그럭저럭 무난한 시작을 했다. 일본에서는 ‘고자질 외교(告げ口外交)’ 등 평판이 나빴던 외교정책도 북한에 개성공업단지 재가동을 검토시키는 등 일정한 성과를 올려 취임 1년째 지지율은 60%를 넘어 국민들의 평가도 높았다.


그것이 완전히 바뀐 것은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사고부터다. 이 사고로 대통령의 대응능력과 국가적 책임이 추궁되어 그 다음 달에는 대통령 지지율이 40%대까지 급락한다. 박근혜 정권 붕괴의 밑바탕이 이 시기에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웠던 남북관계도 2016년 북한이 매월 수폭실험으로 보이는 4번째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매월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여 사태가 긴박해졌다. 3월에는 연속적으로 3발이나 난사했다. 


북한의 폭주를 멈출 수 없었던 박근혜는 국민과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국군 고관들과 연락을 취하는 방위부문 관계자 말에 따르면, 실은 그 와중에 박 대통령은 북한을 말리려고 핫라인을 통해 베이징의 시진핑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시진핑은 그녀의 요청을 그냥 못들은 척했다.


전년 9월,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축하식전에 초대받는 등 박근혜 정권은 한중접근 및 중국의 후한 대우를 자랑스러워했다. 경제적으로도 그 시기는 한국의 대중수출이 전체 수출의 25%, GDP의 약 10%를 차지할 정도였으며, 한국 각지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 수도 계속 증가세를 보인 시기였다.


밀월이라고 믿었던 시진핑한테 배신당한 박근혜의 울분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중국을 믿을 수 없다.” 틀림없이 그렇게 깨달은 박근혜는 그때까지의 중국향 외교 쉬프트를 일본과 미국을 향해 180도 전환시켰다. 그런데 실은 이것이 박근혜 전락(転落)의 시작이다.


2016년 7월 8일, 한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THAAD (종말고고도방위미사일) 배치를 정식으로 발표한다. 이에 대하여 북한 이상으로 맹반발한 것이 중국이다. 미국의 미사일 방위망이 북한을 뛰어넘어 자국으로 향할 수 있다고 느낀 중국은 우선 경제면에서 제재를 건다.


사드배치를 위해 골프장을 제공한 롯데그룹의 중국 롯데마트 74점포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단체여행 제한조치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다음 달 3월에는 40%나 감소했다. 게다가 현대, 기아 등의 자동차 메이커의 중국 내 판매대수가 격감하여 일시적으로 공장폐쇄의 위기까지 내몰렸다.


처음부터 기획된 일인가?


그 외에도 재중한국인에 대한 폭력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한국정부기관을 겨냥한 중국의 사이버테러도 급증한다. 한편 북한도 8월에 미사일실험을 속행, 9월에는 다섯 번째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계속 급락하여. 9월 최종일의 여론조사에서는 취임이후 최저인 30%까지 하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후의 결정타,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진 것이다.


10월 24일,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언론인’에 12년째 선출된 인기 아나운서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케이블TV의 보도프로그램 ‘JTBC 뉴스룸’이 박근혜와 그 맹우(盟友), 최순실에 의한 기밀누설과 국정농단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최순실이 사용했다는 태블릿PC를 입수한 손석희 등은 최순실에 의한 대통령연설문 수정의혹, 박/최 양명(両名)에 의한 자금횡령의혹, 최순실의 딸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출자강요 의혹...등등, 갖가지 의혹을 폭로했다. 이후, 신문, TV, 잡지, 인터넷 등 모든 언론이 보도전쟁을 펼치게 된다. 대통령에 의한 국정사물화(国政私物化)에 국민들은 격분하고 국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17%대로 급락. 그 주말인 29일에는 최초의 촛불집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촛불집회 참가자는 매주 부풀어 올라, 한 달 후에는 200만 명을 넘었다. 마침내 대통령 지지율은 4%대로 추락, 한국헌정사상 최저치를 찍은 것이다.


그런데 마치 온 나라가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였다. 쓰나미와 같은 거대 촛불시위의 와중에서도 기만의 냄새를 맡은 자들이 있었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사면까지 몰고 간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누군가에 의해 짜여진 연극일 수도 있다는 의혹이 여러 명의 언론인에 의해 사건 직후부터 제기된 것이다.  


인터넷 언론사 ‘미디어워치(メディアウォッチ)’의 변희재(邊熙宰), 황의원(黄意元), 그리고 ‘월간조선(月刊朝鮮)’ 출신의 우종창(禹鍾昌) 등이다.


미디어워치는 박/최 ‘국정농단’ 용의를 뒷받침하는 유일한 물증, 태블릿PC가 진짜로 최순실의 소유물인지, 과연 JTBC의 손석희 등은 확실한 뒷받침을 얻은 후에 방송에 내보냈는지를 철저하게 추구했다.


있을 수 없는 재판소의 판결


태블릿 소유자라고 하는 최순실은 검찰조사에서 “나는 태블릿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고 사용방법도 모른다”고 일관적으로 주장하였으며, 검찰도 재판소도 문제의 태블릿PC가 최순실의 소유란 점을 한 번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소는 피고 최순실에게 징역 20년, 박근혜한테 24년의 실형판결을 내렸다.


이상한 판결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날조보도라고 지적당한 손석희 등 JTBC가 미디어워치의 변 대표와 그 일행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여기서도 재판소는 증거제출을 요구한 피고 측의 청구를 기각하고 변희재에게 2년 실형을 선고했다. 더군다나 재판장은 “태블릿의 소유자가 누구인지와 명예훼손 여부는 상관이 없다”고 공언했다고 한다.


재판소의 너무나 횡폭하고 독선적인 판결을 가능케 한 것은 ‘목적(이념)을 위해 사실은 어떻게든 변환할 수 있다’는 좌익전체주의가 한국의 사법계를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 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박주영 재판장은 재판소 내 좌익판사 동아리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1988년에 동아리 설립을 주도한 박시환 전 대법원장은 “우리 모임의 목적은 멤버들의 실력향상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진 멤버들이 재판과 사법운영에 참가하고 재판소를 이상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내부문서에 쓴 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이상적방향’이란 평소의 언행으로 보아 틀림없이 ‘반일반미, 종북친중’의 방향이며 ‘전체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젊은 판사한테 비판받은 적도 있다. (‘동아일보’ 사설 2010년 1월 29일)


수뢰죄로도 기소된 박근혜는 1원도 받은 적이 없는데도 200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북한 교과서로 교육


사법계뿐이 아니다. 좌익전체주의의 오염은 30년 이상 전부터 한국사회의 모든 방면에 퍼지고 있었다. 1987년의 민주화선언 이후, 한국에서도 드디어 공산주의가 해금되었다. 마르크스를 읽는 것도 위법이 아니게 되었고, 언론계, 사상계, 교육계, 노동계....모든 분야에 좌익사상이 침투해갔는데 그 중심에는 북한의 통치원리인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은 주체사상파(주사파)가 있었다.


이 주사파가 기생한 최대 아성이야말로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고 하는 좌파계 노동조합의 내셔널센터였다.


현재 한국의 노조조직율은 10%정도지만 그 세력을 이분하는 것이 보수계 한국노총과 혁신계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 세력은 약 70만 명. 예컨대 대기업 중에서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거의 통째로 민주노총에 강탈당했다.


이 70만 명이 국민을 세뇌하고 선동하고 현재 한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침투가 현저한 것이 언론계인데, 민주노총 산하의 언론노조가 한국의 언론,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다. 기존 미디어에서 언론노조의 뜻에 맞지 않은 논조가 모두 배제당하고 있다. 88년 결성이후, 언론노조가 여러 차례 파업을 거듭하여 신문, TV, 잡지 등 모든 미디어를 석권해버렸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민주노총 산하에 있는 전교조가 89년에 창립되었는데 당초에는 비합법조합이었다. 99년 김대중 시대에 들어서자 합법화되었는데, 결성선언문에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지도자를 육성한다’고 당당하게 밝힌 전교조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도 당연히 주사파다. 주사파가 말하는 ‘조국’이란 당연히 한국이 아니라 레드코리아(レッドコリア)다.


반일반미교육을 격려하는 전교조는 위안부지원단체가 벌이는 수요시위에 학생들을 데리고 가거나, 광우병 소동이 일어나면 반미촛불시위에 참여시키는 등, 학동세뇌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전교조 교사들 중에는 북한 교과서를 그대로 교실에서 사용해서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문재인은 종북좌파 정권


2016년의 촛불시위에는 전국각지에서 다수의 중고등학생들이 참가했는데 그들을 동원한 것은 당연히 이 전교조 교육노동자들이었다.


유년기부터 전교조의 교육을 받고 TV도 신문도 언론노조의 영향을 받은 편향보도...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한국의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반일반미(反日反米), 종북친중(従北親中)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촛불집회에서 박근혜를 매달아 규탄하고,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 30~40대의 한국중견층이 바로 이런 세대인 것이다.


주사파=종북세력의 침투는 정권중추까지 미쳤다. 10년간 계속된 좌파정권,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종북세력은 정권중심부인 고급관료나 군, 경찰, 검찰 등의 치안부문, 심지어 국가정보원 등의 정보부문까지 침투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갔다.


예를 들어 북한의 대남공작을 막는 것이 최대사명이었던 국정원에서도 보수지향이 뚜렷한 구 육사 출신자가 대량으로 숙청되어 그 자리를 친북좌파 경향이 강한 전라도 출신자들이 보충했다. 이명박-박근혜 시대로 흘러가면서 한국정치가 쉽게 전환되지 않았던 것은 국가 중심부에 좌파잔재가 남아 정치를 컨트롤했기 때문이다.


2013년에 정권을 잡은 박근혜는 국내 주사파 일소에 착수했다. 그 이듬해에는 종북노조의 대표격인 교원노조를 비합법화하여 법외노조로 끌어내려, 주사파의 소굴이었던 야당 통합진보당에 해산을 명한다. 그와 동시에 통진당 선출의 국회의원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죄로 체포했다.


결국 그로부터 3년 후에 일어난 박근혜 탄핵은 사드 도입으로 중국의 노여움을 산 것과 동시에, 이 시기에 최대거점인 두 조직을 괴멸당한 국내 주사파=종북좌익들에 의한 보복조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적폐’를 ‘청산’하고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이제 완전한 혁명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취임당초, 문 정권의 제2인자인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지명된 인물은 학생운동출신의 임종석이었다. 그가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평양에 여대생을 보내고 김일성과 뜨거운 포옹을 하게 만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란 사실은 한국에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주사파 대표와 같은 인물을 넘버2의 지위에 앉혔으니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전체주의 종북좌파 정권이라고 밝히고 나선 것과 마찬가지다.


타도대상은 문재인


전체주의정치의 통치수단은 첫째로 국민을 세뇌하고 암시를 거는 것인데 남북융화 일변도로 다른 분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문재인 정치로 인해 경제가 점차 피폐하고, 외교도 빈번히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자 원래 주체사상에 친근감 따윈 없었던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이제 겨우 최면상태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다.


3월 1일, 서울 중심부의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식전에서는 중앙에서 연설하는 문재인을 3대의 대형스크린에서 보여주는데 약 1만 명의 시민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주위를 둘러싸듯 수십만 명의 또다른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결집하여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쳤는데 이런 사실은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남대문 부근을 출발한 태극기 군중은 롯데호텔-광화문광장-청와대-서울시청으로 약 2시간에 걸쳐 서울 중심가를 행진했다. 참가자 중에는 일장기와 성조기를 들고 ‘한·일연대(韓日連帯)’ 및 ‘한··일 연대(韓米日連帯)’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모른다.

 

서울에 지국을 두고 한국의 정치상황을 관찰하고 있다는 일본의 각 신문사와 방송국도 그것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노조가 조종하는 미디어는 ‘불편한 진실’을 일절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에게는 YouTube, SNS 등의 뉴미디어가 있다. 태극기시위에 참가한 수십만 명은 즉각 동영상을 찍고 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본 전국의 한국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 문재인’의 좌익정치에 싫증난 사람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 이상한 징용공 판결에 분노를 느껴서 보복하고 싶다면, 우리 일본인들이 해야 할 일은 ‘공산주의자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그들 한국 보수층을 지원해서 하루빨리 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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