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23일 지난 30여 년 동안 이민 정책의 골격이 돼온 '다문화주의'를 공식 폐기했다.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이날 부분 개각을 단행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민부의 공식 명칭을 '이민 다문화부'에서 '이민 시민권부'로 바꿔버린 것이다.
단순히 부처 이름이 바뀌는 데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간 하워드 총리가 보여 온 태도로 볼 때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의 한 단면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물론 하워드 총리 자신은 다문화주의라는 말을 이민부의 명칭에서 빼버린 게 다문화주의 폐기 처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시민권'이라는 말이 새로 오는 이민자들에 대한 호주인들의 여망을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간단하게 호주 언론들에 설명했다.
그는 명칭에서 빼버렸다고 해서 다문화주의라는 용어가 사라진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모든 호주인들은 이민자들이 호주 땅에 왔으면 호주인들이 돼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민자들이 호주 땅에 살면서도 영어나 호주의 가치도 잘 모른 채 자신들의 가치만을 추구하며 다문화주의 깃발아래 안주해보겠다는 식의 태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공공연하게 호주에 대한 테러 위협이나 반호주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일부 이슬람권의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문화주의의 폐기는 이민자들에 대한 시민권 심사 때 영어 등 호주의 가치에 대해 시험을 보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정책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호주 시민이 되려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주창하기에 앞서 호주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셈이다.
지난 1970년대 초 캐나다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문화권간의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는 호주에서도 고우 휘틀람 내각에서 곧 사용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호주 이민정책의 근간이 돼왔다.
그러나 1980년대 호주 역사학자 제프리 블레이니 교수가 다문화주의가 야기하는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도 다문화주의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해온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이민부 명칭 변경과 관련, 호주의 한 언론은 다문화주의가 이날 호주 연방정부 정책에서 공식적으로 떨어져나갔다면서 "다문화주의가 지금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결국 하워드 정부에 의해 서서히 질식사하고 말 것"이라고 논평했다.
(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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