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 = 유용욱 주필 | 바람의 결이 서늘하게 바뀌는 계절이다. 나뭇잎은 무성했던 녹음(綠陰)을 뒤로한 채 힘없이 길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깊숙이 여미며 차가워진 공기를 비켜선다. 들녘의 풀포기조차 겨울을 맞이할 채비에 분주한 이 무렵,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가을과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은 그저 해마다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는 생애 가장 차갑고 아득한 단절,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잔혹한 겨울의 시작이다.
서늘한 계절, 법정의 문이 닫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법정(法庭)의 무거운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 육중한 출입문이 닫히며 낸 울림은 법정을 넘어서 하나의 인생이 아득한 절벽 아래로 내던져지는 소리였다. 망치를 들고 업무용 PC 하드디스크를 깨부수고, 메모리 칩을 손발로 구부려 짓밟은 뒤 밭둑과 목욕탕 쓰레기통에 내던졌던 전재수 전 의원실 선임 보좌관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마음에 준비를 할 시간조차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정구속되었다. 자신의 손에 생애(生涯) 처음으로 차가운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그가 바라보았을 법정의 천장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그 선임 보좌관을 믿고 지휘를 따랐던 또 다른 보좌관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이라는 중형(重刑)을 받았고, 서른 줄의 젊은 비서관, 그리고 불과 스물넷, 이제 막 대학 문을 나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사회의 공기를 마셨을 청년 인턴 비서관에게까지 벌금형이라는 참혹한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다.
지시받은 업무가 정당한 업무지시라 믿고 묵묵히 손을 움직였을 그 청년의 손끝에 지금 남은 것은 희망이 아닌 평생을 따라다닐 주홍글씨였다.
재판부의 판결문은 서슬이 퍼랬다. 국가의 공공기록을 파기한 이들의 범행이 “국민의 헌법상 알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했다”고 일갈(一喝)했다. 그리고 피고인들의 가슴을 송곳처럼 찌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피고인들이 이 범행을 저지른 까닭은 다름 아닌 ‘추후 전재수로부터 유무형의 이익을 받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전과자가 된 수족, 그리고 족쇄(足鎖)를 찬 가족들
참으로 잔인하고도 슬픈 역설(逆說)이다. 자신이 모시던 정치인을 향한 충성심이었든, 아니면 거역할 수 없는 조직의 서슬 퍼런 위계(位階) 때문이었든, 상급자의 지시와 조직의 안위를 자신의 삶보다 우선시했던 보좌진들. 그들이 충성의 대가로 손에 쥐게 된 것이라곤 회색빛 차디찬 감옥의 감방이거나,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범죄자'라는 주홍글씨뿐이다.
날이 이렇게 서늘해지는데, 비록 1심이긴 하지만 실형을 선고받아 얇은 죄수복을 입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그 보좌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가족들은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이 아리고 아픈 계절을 견뎌야 하는가.
만일 최종심에서까지 1심 선고 형량이 유지된다면 그 보좌진들은 이제 죽고 나서도 국립묘지는커녕 '전과자'라는 무거운 족쇄를 영원히 차야 한다.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는 그들의 자식과 부모, 가족들은 평생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비참한 굴레를 짊어진 채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숨죽이며 살아가야 한다.
갓 스물넷,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야 할 인턴 비서관이 짊어지게 된 벌금형의 무게는 단순한 벌금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꺾여버린 그 푸른 청춘의 자존심이자, 앞으로 그가 걸어가야 할 모든 길목을 지독하게 옥죄어 올 현실의 벽이다.
누군가는 지시를 내리고 영전(榮轉)을 거듭하는 동안, 그 지시를 이행한 이들의 가정을 베어 문 것은 지독한 경제적 어려움과 심정적 좌절,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수치심일 것이다. 지켜주지 못한 부모의 눈물과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감춰야만 하는 아이의 상처는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한단 말인가.
감옥으로 간 보좌진, 시장실의 '부캉이' 놀이
그런데 바로 그 시각,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자 증거인멸이라는 거대한 범죄의 최종 수혜자라는 의혹의 중심에 선 인물인 전재수 부산시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부산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들어온 길 잃은 상어 한 마리, 일명 '부캉이'에게 애틋한 작별 인사를 건네며 SNS에 감성 어린 글을 올리고 있었다. "부캉아! 넓은 바다에서 단디 살아라, 고마웠다." 세상을 향해 가장 따뜻하고 낭만적인 정치인의 얼굴을 하고, 시민들의 환호와 좋아요 세례 속에서 감수성 넘치는 시장님 놀이에 여념(餘念)이 없었다.
미물(微物)을 향한 그 차고 넘치는 동정심과 다정함은 왜 정작 자신을 위해 인생을 내던진 보좌진들에게는 단 한 조각도 미치지 못하는가.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밤을 새워 망치질을 하고, 파쇄기 소리에 숨을 죽이며 하드디스크를 깨부수었던 수족(手足)들은 감옥으로 끌려가고 전과자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난장판의 몸통인 당사자는 부산시장이라는 화려한 감투를 쓰고, 시청 집무실의 회전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감상적인 문장에 몰두하고 있는 이 풍경.
보좌진의 눈물 위에서 상어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이 모순적이고 부조리하면서도 기괴한 장면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 집권 여당 내 핵심 인물들과 그 주변 정치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잔혹하고 추악한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은밀한 지시의 그림자와 명품 시계의 진실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재수 시장, 당신에게도 양심이 있고 이성이라는 게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보라. 갓 스물넷의 청년 인턴까지 포함된 하급 비서진들이, 자신들의 개인적인 출세나 사익(私益)을 위해 독자적으로 의원실 PC를 초기화하고 망치와 드라이버를 들고 저장장치를 깨부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었겠는가.
수년 치 당신의 미팅 내역과 국회의원 시절의 일정표, 그리고 여러 비밀스러운 기록들을 하급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파괴할 권한이 어떻게 그들에게 있단 말인가.
재판부조차 판결문에서 "선임비서관이 범행을 독자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사가 판결문에 이와 같은 문장을 남겼다는 것은, 은밀하게 내려진 지시의 배후와 권력의 그림자를 사실상 명확히 짚어낸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필자가 내린 주관적 결론이다.
수사 과정을 통해 그나마 밝혀진 바 있는 통일교 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수천만 원 상당의 현금과 785만 원 상당의 까르띠에 명품 시계.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시계의 고유번호를 추적해 전 시장 지인의 명품관 수리 이력까지 낱낱이 확인했다.
"시계를 차본 적이 없다"던 주장은 시계 고유번호라는 완벽한 물증 앞에 무너졌다. 통일교 핵심 관계자의 구체적인 진술, 출판기념회라는 형식을 우회해 거둬들인 1,000만 원의 금품 정황까지, 진실을 가리키는 퍼즐 조각들은 이미 사방에서 완벽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공소시효 만료(滿了)라는 법 기술이 제공하는 은밀한 그늘 뒤로 숨었다. 당신의 보좌진들이 망치로 하드디스크를 깨부수며 만들어낸 증거인멸이라는 방패 뒤로 자신을 바싹 가린 채,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니 나는 무죄"라며 시민들 앞에서 오만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사법적 처벌을 피했다고 해서 그 지은 죄마저 사라지는가.
어쩌면 그렇게 당신들은 온통 다 닮아 있는가. 사법적 유죄 입증 실패(Not Guilty)가 형사 피고인의 도덕적 완전무결(Innocent)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미법계 법원에서는 국가(검찰)가 입증 책임을 다하지 못했거나 제시된 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만큼 혐의가 완전히 소명(疏明)되었다 보기 어려울 경우,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미의 무죄(Innocent)가 아닌 "유죄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미의 '유죄 아님(Not Guilty)'으로 판결하는 것이다.
당신의 밤은 진정 편안하고 안락한가
전재수 시장에게 묻는다. 당신을 위해 범죄자가 되고 전과자가 된 보좌진들이, 차디찬 감방 바닥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가슴을 칠 때, 당신은 시청 집무실의 따뜻한 의자에 앉아 또 어떤 감성적인 마이크를 잡을 궁리를 하고 있는가.
당신의 이름을 믿고 청춘과 인생을 바쳤던 그들이 평생 전과자라는 족쇄를 차고, 그들의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고개를 숙인 채 살아갈 때, 당신은 부산시장이라는 높은 자리를 꿰차고 앉아 한가롭게 상어 이야기나 나누고 있으니, 참으로 당신의 밤은 편안하고 마음이 평안한가 말이다.
공소시효(公訴時效)라는 사법적 방패가 당신의 형사 처벌은 잠시 유예(猶豫)해 주었을지 모른다. 부도덕한 법률가들의 궁색(窮色)한 논리가 당신의 손목에 당장 수갑을 채우는 것은 막아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과 양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영혼의 법정에서 당신은 이미 중죄인이다.
자신을 향한 정당한 의혹 제기에는 '허위사실 유포'라며 칼날 같은 고소장을 휘두르는 서슬 퍼런 오만을 보이면서, 정작 자신 때문에 인생이 박살 난 부하들의 유죄 판결 앞에서는 철저하게 입을 닫는 그 비겁함. 부하의 구속과 파멸을 남의 일 보듯 방관하는 그 잔혹함 속에서, 부산시민과 국민들은 권력이 가진 가장 비열하고도 이중적인 민낯을 목격한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긴 듯하지만,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이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화려한 부산시장의 감투도, 카메라 불빛 아래서 받던 시민들의 일시적인 환호도 때가 이르면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장마철 안개처럼 걷혀갈 뿐이다.
하지만 진실을 감추기 위해, 또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삶과 그 가족의 행복을 짓밟은 그 지독한 죄업(罪業)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그늘 아래에서 차가운 감옥의 문 뒤로 들어간 이들의 신음 소리, 그리고 한순간 절망에 빠진 가족들의 눈물 속에 감추어진 진실은 이미 당신을 향해 추상(秋霜)과 같은 단죄(斷罪)를 시작하고 있다.
전재수 시장은 지금부터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비겁한 침묵 뒤에 숨지 말고 사건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보좌진과 그 가족들이 짊어진 법적 · 도의적 무게와 눈물을 외면한 채 고소나 고발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법정에서 진행되는 역사와 대중의 엄중한 평가 결과 이루어질 시간의 단두대(斷頭臺)는 이미 당신의 정치적 운명을 향해 가장 서늘하고도 냉혹하게,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분하게 내려앉고 있기 때문이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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