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암살자(들)’ 역사왜곡 논란 정치권까지… 배우들 ‘진실’ 추천사도 도마

“음모론을 사실처럼”… 포털·커뮤니티서 역사왜곡 비판 확산
김고은 “현재에 감사”·박병은 “진실은 이긴다”… 영화계 한줄평도 재소환
장동혁 “표현의 자유는 좌파 전유물인가”… 유영하 “선 넘었다, 책임 따를 것”

인싸잇=전혜조 기자ㅣ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건의 배후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없음에도 영화가 박 전 대통령 측의 연관 가능성을 주요 서사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확산하면서다. 여기에 배우·감독들이 남긴 ‘진실’ 추천사까지 다시 소환되면서 온라인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23일 개봉한 ‘암살자(들)’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미수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형사와 기자들이 당시 수사의 의문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문세광이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사건의 배후였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지만, 영화는 중앙정보부와 박 전 대통령 측의 연관 가능성을 주요 서사로 내세우며 공식 수사결과와 다른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같은 설정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에 확인되지 않은 음모론을 덧씌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육영수 여사의 유족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실존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연상시키는 설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영화 측이 공개한 배우·감독·작가 등 영화계 인사들의 친필 추천사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 김고은은 “현재에 대한 감사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꼭 함께 봐주시고 느껴주세요”라고 적었고, 박병은은 “아프지만 진실은 이긴다”, 임수향은 “진실을 찾아가는 숨 막히는 시간들”, 정윤철 감독은 “진실을 찾는 모든 분들께…”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온라인에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에 대해 연예인과 감독들이 반복적으로 ‘진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을 문제 삼는 반응이 이어졌다.

 

영화가 제시한 의혹과 각색을 이미 확인된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유명 배우들의 추천사가 관객에게 영화 속 설정을 ‘밝혀진 진실’처럼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설정이 허용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영화로 만들어도 되는 것이냐”,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음모론을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로 만든 방식이 문제”라는 취지의 반응도 확산됐다.

 

허진호 감독은 “팩트를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만들었다”며 결론은 관객의 판단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포털 관람평에서는 “역사 왜곡”, “음모론을 사실처럼 만들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장 대표는 “육영수 여사 피격의 배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는 참으로 황당한 스토리”라며 북한 선전영화 ‘민족과 운명’의 리메이크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어 2002년 박근혜 당시 의원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과 관련해 “암살 음모는 하급자들이 관련됐으며, 나는 사전에 그런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좌파들은 이런 영화를 만든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고 했다.

 

장 대표는 또 “5·18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감옥에 간다. 6·25 북침론, 천안함 미국 잠수함 충돌 주장은 ‘표현의 자유’다. 노무현 대통령 건드리면 줄줄이 고소·고발당한다. 박정희 대통령 모욕은 ‘표현의 자유’다”라며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육영수 여사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도 강도 높은 입장을 내놨다.

 

유 의원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해 육 여사 피격의 배후가 마치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묘사했다”며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명백한 사실을 비틀어 역사를 왜곡하고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패륜 행위이자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이번 영화는 명백히 그 선을 넘었다”며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며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관련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권양숙 여사가 사주했다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인가”라고 반문했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세상에 북한의 정치선전 영화도 버젓이 리메이크하네”라고 꼬집으며 같은 논리라면 5·18의 성격을 뒤집거나 무안공항 사고와 이태원 참사를 북한의 사주와 연결하는 내용의 영화도 만들어도 되는 것이냐는 취지로 반문했다.

 

이어 “우연히도 작가의 추리력과 상상력에 의해 유사하게 스토리가 만들어졌겠지만”이라고 덧붙이며 영화의 설정을 비꼬았다.

실존 인물과 실제 역사를 다룬 작품일수록 ‘상상력’이라는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건의 유족이 생존해 있고 역사적 사실관계가 존재하는 만큼, 표현의 자유만을 앞세우기보다 왜곡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책임 있는 설명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