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영웅(英雄)과 비겁한 군 통수권자는 누구인가

DMZ의 핏빛 흙먼지 속에서 묻는다..
적지(敵地)에 먼저 들어가는 대대장, 책임의 사지(死地)에서 도망치는 최고 통수권자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2002년 개봉한 베트남전 실화 바탕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의 가장 눈부신 장면은, 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생사(生死)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깊은 골짜기로 향하기 직전, 할 무어 중령(멜 깁슨 분)이 연병장에 선 어린 병사들 앞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던 맹세의 순간이다.

 

 

피와 흙먼지 속에서 완성된 '지휘관의 맹세’

 

"우리는 지금부터 신성한 전투에 돌입한다. 내가 부하들보다 가장 먼저 적지(敵地)에 발을 디딜 것이며, 철수할 때는 맨 나중에 나올 것이다. 내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단 한 사람의 부하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이 명대사는 단순한 영화 속 대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목숨을 짊어진 자가 마땅히 치러야 할 영혼의 몸값이었고, 계급장의 무게를 피로 증명하겠다는 지휘관의 거룩한 제의(祭儀)였다.

 

2026년 9월, 짙은 안개와 풀벌레 소리만이 조용히 흐르던 대한민국 서부전선 제25사단 비무장지대(DMZ). 그 조용하고도 잔혹한 침묵의 땅에서,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도 숭고한 현실의 '할 무어'를 목격했다.

 

군사분계선(MDL) 남쪽의 서늘한 수색로. 최근 북한이 수시로 MDL을 넘나드는 도발을 감행하며 몰래 흙을 파헤치고 악의(惡意)의 살상용 지뢰를 묻어둔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그 어두운 길목에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폭음이 터졌다.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치솟았고, 작전에 투입되었던 젊은 부사관의 비명이 찢어지듯 들려왔다. 한쪽 다리를 감싸 쥔 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하. 그 순간, 그곳은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지뢰가 터져 온몸을 갈가리 찢어놓을지 모르는 생지옥, 즉 '사지(死地)'로 변해버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발이 묶였을 그 절체절명의 순간, 육군 제25사단 수색대대장 조 모 중령(학군 46기)의 발걸음에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대대장이라는 계급이 주는 안전함과 권위를 내던지고, 지휘관이라는 이름의 무거운 책무(責務)만을 짊어진 채 스스로 피비린내 나는 폭발의 중심부를 향해 뛰어들었다. "부하를 구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간절한 염원(念願)이 그를 사지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어 두 번째 폭발이 터졌다. 첫 폭발로 부상을 입은 부사관을 구조하기 위해 다가가던 수색대대장이 또다시 폭발에 휘말렸고, 그는 한쪽 발목에 중상을 입었다.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은 그의 상태는 참혹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먼저 걱정한 것은 자신의 상처가 아니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조 중령은 국방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자신의 수술 후 경과보다 자신과 함께 작전에 투입됐던 전우들의 안위(安危)를 먼저 물었다고 한다.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된 순간에도 부하들의 생사부터 살핀 것이다. 이것이 군인이다. 먼저 위험 속으로 들어가고, 위기의 순간에는 자신보다 전우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차디찬 DMZ에서 한쪽 발목을 잃으면서도 전우들의 안위를 먼저 묻고 있는 한 군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지휘관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묻게 한다.

 

영웅의 피 위에 얹힌 국가의 '비겁과 침묵’

 

그러나 이 얼마나 비극적인 대조인가. 현장의 대대장이 작전 중 부상당한 부하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바쳐가며 '지휘관의 숭고함'을 피로 증명하고 있을 때, 그 영웅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국방부와 군 수뇌부, 그리고 국군통수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참담함을 넘어 깊은 슬픔과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낸다.

 

사고 직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을 보라. 그들은 '미상(未詳)의 폭발'이라는 희미한 단어 뒤로 숨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 중’이라면서도 '북한 소행 가능성을 낮게 본다'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국민을 대신해 진실을 묻는 언론을 향해서는 다분히 고압적인 태도와 엉뚱한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북한군이 최근 몇 달간 MDL을 무단으로 넘나들며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전술도로를 개설하며 지뢰를 매설하는 현장을 똑똑히 지켜보았으면서도, 이에 대한 우려에는 "원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한가한 소리만 되풀이하던 군 수뇌부였다. 우리 군 간부의 발목을 앗아간 그 지뢰가 파괴력이 강력한 북한의 목함지뢰라는 정황과 전문가들의 증언이 터져 나오는 중에도 그들은 끝내 '주적(主敵)'의 이름조차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적의 도발을 도발이라 부르지 못하고, 적의 악의를 눈감아주며, 북한의 눈치 보기에 골몰하는 비겁한 군대. 그 침묵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그런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라 국가안보라는 무거운 의무를 내팽개친 채 직업인에 불과한 군인공무원들만 모인 '관료 집단'일 뿐이다. 작전 현장의 일선 지휘관이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조차, 군 수뇌부는 대통령실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책임의 사지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뢰밭에 내몰린 우리 장병들, 평양에 내어주는 93억의 비극

 

더욱 가슴을 치게 만드는 것은 국군통수권자인 이재명 정권의 기괴한 '안보 민낯'이다. 우리 장병들은 지뢰 탐지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낡은 장비들과 지뢰 덧신에 의지한 채 목숨을 걸고 DMZ 수색로를 개척하고 있다. 그 차가운 땅에서 우리 청년들의 피가 흘러넘치는데, 이 정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재명 정부는 통일부를 통해 평양 강동군병원 등에 엑스레이, 제세동기, 인공호흡기 등 최첨단 의료장비 1,600여 점, 무려 93억 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북한에 바치겠다고 발표했다. 이 얼마나 아득하고 기이한 비극인가. 정작 자신의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발목을 잃은 국군의 영웅에게는 '끝까지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상투적인 말 몇 마디 던져놓고, 그 장병의 발목을 앗아간 지뢰를 묻은 상대에게는 93억 원이라는 막대한 의료 장비를 바치려 안달이 나 있다.

 

상대가 받겠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는 일방적인 '짝사랑 외교'에 우리 장병들의 피와 눈물이 북한을 향한 구애용 제물(祭物)로 바쳐지고 있는 것이다. 방위병 출신에다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인사들을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힌 대통령이다.

 

최전방 경계 태세를 스스럼없이 무력화하며 ‘대북 유화책’이라는 허황된 환상에 취해 있는 국군통수권자. 그래서 이번 DMZ 지뢰 참사는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정권의 안보 불감증과 통수권자의 비겁함이 불러온 '예고된 인재(人災)'이자 국가 안보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책임지지 않는 통수권자는 영웅을 말할 자격이 없다

 

다시 묻는다. 현장에서 부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진 대대장이 참된 군인의 길을 걸으며 비무장지대를 핏빛으로 물들일 때, 이 나라의 군 수뇌부와 국군 통수권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부하의 피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적의 엄혹한 도발 앞에서는 입을 다물며, 허울 좋은 평화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자들이 어떻게 감히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부요 최고 통수권자라 칭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 『위 워 솔저스』에서 할 무어 중령이 위대했던 이유는 그가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계급이 가진 무게를 알았고, 부하들의 생명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책임졌기 때문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실종되었다. 부하의 발목이 잘려 나갔음에도 정권은 북한의 심기만을 살피고 있으며, 국방부는 진상 규명보다 언론의 취재와 불리한 기사를 막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피를 흘린 자는 오직 작전 현장의 장병들이요, 그들이 흘린 피 위에서 영광과 권력을 누리는 자들은 고급 카펫이 깔린 집무실에서 북한과의 평화 쇼를 꿈꾸는 정권의 위선자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강력히 촉구한다.

 

당신이 진정 이 나라 5,000만 국민과 50만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라면 더 이상 비겁한 침묵 뒤에 숨지 마라. 즉각 이번 DMZ 지뢰 참사의 전모를 천하에 밝히고, 북한의 도발 정황이 확인되는 즉시 대북 의료 지원이라는 기만적인 대북 유화책을 당장 철회하라. 그리고 북한을 향해 가장 단호하고 매서운 응징과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라.

 

언론들 역시 이번 작전 중 맞닥뜨린 비상 상황에서 주저 없이 목숨을 걸고 사지로 뛰어든 25사단 수색대대장의 숭고한 희생을 한낱 일회성 뉴스거리로 소비하지는 말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밀도 높은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는 분단국가라는 엄혹한 현실 속에서, 이제는 일회성 보도를 넘어 국가 안보 강화와 일선 장병들의 실질적인 안전 대책을 조명하는 깊이 있는 기획기사를 이어가야 한다.

 

또한 안보 최전선에서 목숨을 담보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의 처우 개선과 이들의 생명을 보호할 안전장비 확충을 강력히 촉구함으로써, 제2, 제3의 희생을 막고 제복 입은 영웅들이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군 지휘관이 조국의 산하와 자신의 부하 장병을 위해 살을 깎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때, 국가가 그 희생을 외면하고 적의 눈치를 본다면 이 땅에 제 나라를 위해 피 흘릴 군인은 더 이상 남지 않을 것이다. 군 통수권자가 책임을 등지고 영웅의 피를 욕되게 하는 사회에서 미래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DMZ의 차가운 안개 속에서 또 다른 우리의 아들과 형제들이 피 흘리며 비명을 지르기 전에, 통수권자는 이제 답해야 한다. 진정 군의 최고 통수권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책임의 사지에서 도망친 비겁자로 기억될 것인가. 피 묻은 DMZ 흙먼지 위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국군통수권자의 자격을 물으며 그의 단호한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