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 농촌 ‘술렁’… 투기 근절인가, 재산권 논란인가

농지 전수조사 27% ‘위반 의심’… 농촌 현장 술렁
투기 근절 vs 농민 재산권… ‘경자유전’ 현실 논란
정부 구제책 마련… 농지 거래 위축·가격 하락 우려

인싸잇=임종옥 기자ㅣ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농촌 현장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투기성 농지 취득과 불법 임대차 등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농촌의 현실과 농지법의 원칙 사이에 괴리가 상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는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농지 관리 실태와 투기 문제를 지적하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정부는 588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투입해 5월부터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 원칙, 즉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제 농지 관리에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개발이익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농지 투기를 차단하고 농업인의 안정적인 영농 기반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농촌의 고령화와 지방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지 소유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농지를 상속받았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는 자녀, 고령으로 영농을 중단한 농민, 이웃에게 농사를 맡기는 경우 등 농촌에는 다양한 형태의 농지 이용 관행이 존재한다.

 

조사 대상 27%가 ‘위반 의심’… 실제 처분은 별개

 

정부가 5월 18일부터 7월 말까지 항공사진 등을 활용해 기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 대상의 27%인 284만 필지가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유형별로는 불법 임대차 의심이 21.1%로 가장 많았고, 무단 휴경 11.6%, 불법 전용 9.0%, 소유 제한 위반 1.4% 등이었다. 다만 한 필지에서 여러 유형이 중복될 수 있어 각 비율을 단순 합산할 수는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위반 의심’과 실제 법 위반은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휴경이나 임대 사실이 확인됐다고 해서 곧바로 처분명령이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농지 취득 경위와 영농 의사, 실제 이용 상태 등을 추가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23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에 출연해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현실에 맞는 농지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위반 의심 농지가 약 30만㏊에 달하지만 “의심된다는 것이지 법 위반이나 처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전수조사를 농지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기’와 ‘불가피한 미경작’ 어떻게 구분하나

 

논란의 핵심은 투기 목적의 농지 취득과 농촌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농지법 위반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있다.

 

정부가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힌 대상은 실제 영농 의사 없이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을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경우다.

 

실제 한 신도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는 122명이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했지만, 조사 결과 한 사람이 전체 농지를 경작한 사례도 확인됐다.

 

반면 영농계획서를 제출할 당시에는 실제 농사를 지을 의사가 있었지만 이후 건강이 악화됐거나, 고령으로 영농이 어려워진 경우까지 투기로 간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는 항공·위성사진과 농업경영체 등록정보, 농지 취득 시기, 임대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실제 판단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마다 기준이 달라질 경우 형평성 논란이나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 ‘구제책’ 마련… 농민 반발은 여전

 

정부는 21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투기 목적이 아닌 농지법 위반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처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상속이나 고령화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지와 농촌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임대차 등에 대해서는 자진 정비와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정상화할 수 있도록 구제·계도 절차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이를 기존 입장의 변경이 아니라 그동안 밝혀온 ‘투기와 일반적 위반을 구분한다’는 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윤원습 농식품부 농업정책관은 “개발 호재를 노리고 허위 영농계획을 수립해 농지를 지분으로 취득하는 투기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투기는 농업인의 농지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농지 가격 왜곡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다만 현행 농지법에는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위반 사항의 처분을 경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특별조치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관련 법안을 올해 안에 국회 의결까지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농촌 현장 “거래 위축·가격 하락 우려”

 

농촌 현장에서는 전수조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일률적인 규제가 농촌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대현 농업경영인연합회 정선군회장은 농사를 짓지 않는 토지주가 직불금을 받는 등의 부정행위는 막아야 하지만, 고령 농업인이 농지를 처분하려 해도 농업인이 아니면 농지를 살 수 없어 낮은 가격에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천의 한 금융기관 관계자도 “아직 농지 경매가 본격화된 상황은 아니지만 정책 변화가 없다면 올 하반기나 내년부터 관련 문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수도권 등 투기 우려지역과 농촌지역에 사실상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농지 매수세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농촌에서는 이번 조사 이후 농지 거래가 얼어붙고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공방 확산도 이어져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경자유전’이 아니라 ‘경자유죄’라며 조사 중단을 요구했다. 농촌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농민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반면 정부는 농지 투기를 방치할 경우 실제 농사를 짓는 농업인의 농지 접근성이 떨어지고 농지 가격이 왜곡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농지 전수조사의 성패는 투기 근절이라는 원칙과 농촌의 현실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한 기준을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투기 목적의 불법 농지 취득은 엄정하게 가려내면서도 상속·고령화·질병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한 농지 문제까지 일률적으로 처분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수조사가 단순한 단속에 그칠지, 아니면 급변한 농촌 현실에 맞춰 농지 제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지는 향후 정부의 세부 기준과 특별조치법의 내용, 그리고 실제 현장 적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