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윤승배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원이 다른 국가기관이나 정치 권력, 사회 세력은 물론 소송당사자로부터도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법관 후보 제청을 두고 정부·여당과 대립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이 이를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제12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헌법상 독립된 국가기관인 법원이 이같이 재판할 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러한 헌법적 사명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우리 사법부에 주어진 변함없는 책무”라며 “법원은 사법권을 오직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행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 구성원들을 향해 “사회적 갈등과 극심한 대립이 재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갈등이 첨예할수록 법원은 더욱 흔들림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맡은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권 독립이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압력과 간섭을 받아왔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1948년 제헌헌법과 같은 해 9월 13일 미군정으로부터의 사법권 이양을 통해 삼권분립과 사법권 독립의 원칙이 제도적 실체를 갖추게 됐지만, 그 이후에도 사법권 독립이 언제나 온전히 지켜졌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청와대와 사전 합의를 거치지 않은 채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자로 서면 제청했다.
청와대는 이후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제청”이라며 재제청을 요구했으며, 대법원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국민의 사법 접근성과 재판의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강조했다.
전국 각지의 가정법원·회생법원 확충과 해사국제상사법원 개원 준비, 노동법원 등 전문법원 설치 연구를 비롯해 ‘민생사건 적시처리부’ 운영과 감정절차 관리제도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한 사법지원과 범죄피해자 증인지원제도 확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 접근성 개선, 차세대 전자소송과 형사전자소송 구축 및 재판지원 인공지능(AI) 시스템 고도화 등을 통해 재판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했다.
오는 1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제20차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 회의도 언급했다. 이번 회의에는 약 40개국의 대법원장·대법관과 10여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하며, 사법부의 역할과 재판 과정에서의 AI 활용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조 대법원장은 기념사 말미에 고(故) 신종오 판사를 추모하며 “언제나 국민의 입장에서 깊이 고민하셨던 고인의 헌신과 뜻을 우리 모두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법원의 날은 대한민국이 1948년 9월 13일 미군정으로부터 사법권을 이양받은 것을 기념하고 사법권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2015년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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